“60세부터는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어요.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으면 그게 사치죠.”
몇 년 전 배우 윤여정(76)의 이 말 한마디에 노화(老化)의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 ‘60세엔 나도 저런 사치를 누릴 수 있겠지’란 기대마저 싹텄다. 74세에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거머쥔 그의 인생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노인 혐오를 말끔히 지워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전 세계를 누비며 시원시원한 입담과 재치 넘치는 유머,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을 쏟아내는 윤여정에게 열광했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나”, “너무 ‘1등’ ‘최고’만 고집하지 말고 다 같이 ‘최중’이 되면 안 되나” 등 그의 어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전히 돌고 돈다. 그렇게 70대에 우뚝 선 배우는 ‘시대의 어른’으로 등극했다.
최근 노화의 두려움이 다시 급습했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똑같이 표결을 하냐”는 김은경(58)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이 두려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청년층보다 고령층이 과다 대표되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여명 비례 투표’를 꺼냈다가 ‘노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노인을 ‘미래가 짧은 분’이라고 표현한 것도 기함할 만하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투표권을 제한하자는 제안도 얼마나 차별적인 발언인가.
미래가 짧은지 긴지는 대봐야 안다. 태어나는 건 시간 순이지만 생을 마감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나 노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도 수명을 담보할 수 없다. 게다가 연금은 바닥나고 기후위기로 숨쉬기도 어려워지고, 길어진 수명에 일도 더 해야 한다는데 정치적 결정권을 없앤다니. 얼마 남지 않은 암울한 미래에 공포가 밀려왔다.
공포스러운 과거도 떠오른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서는 “6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집에서 쉬셔도 되고(2004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50대 접어들면 멍청해진다. 60대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2004년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등 틈만 나면 ‘노화 공포’를 부추겼다. 반복된 공포는 증폭된다.
공포는 김호일(81) 대한노인회장이 김은경 위원장의 사진에 따귀를 날리는 데서 극에 달했다. 노인 비하 발언을 사과하러 온 김 위원장 면전에서 김 회장은 “1,000만 노인을 대표해 내가 따귀라도 때려야 노인들 분이 풀리겠지만, 손찌검은 안 되니까 사진에 뺨을 좀 때리겠다”며 김 위원장의 사진을 찰싹찰싹 때렸다. 보는 이들마저 뺨이 얼얼할 정도로.
이게 왜 폭력이 아닌가. 아무리 정치적 연출이라 해도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 회장은 ‘시대의 꼰대’가 됐다. ‘사진 따귀’ 영상은 SNS에서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김 회장이 16대 총선을 앞두고 2000년 2월 공천에서 탈락한 후 당시 하순봉 한나라당 사무총장에게 발길질하는 사진과 함께.
복기가 필요하다. 윤여정은 할리우드의 인종 차별 논란에 이같이 답했다. “무지개도 일곱 색이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