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또 시련이 찾아왔네요.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야죠.”
지난 2일 경기 남양주 ‘네오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윤진현(62) 대표가 외쳤다. 최근 원자잿값 폭등으로 회사는 또 한번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36년간 가구만 만들어온 ‘가구장이’ 윤 대표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1987년 네오퍼스의 전신인 ‘금강종합가구산업사’를 설립해 초고속 성장세가 이어지던 사업 초기 몇 년을 빼면 위기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눈앞에 닥친 파고를 넘어왔다.
네오퍼스의 전신인 ‘금강종합가구사’는 1987년 서울 을지로에서 가구 도소매점 간판을 달고 직원 4명과 함께 출발했다. 열정과 패기로 무장한 20대 윤 대표는 발로 뛰는 영업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사업 성공을 확신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네오퍼스는 1990년대 들어 신도시 건설 붐과 맞물려 단순 가구 유통을 넘어 가구 제조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설립 5년도 안 돼 연 매출 100억 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세가 커지자 1994년에는 지금의 본사가 있는 경기 포천에 땅을 사 제조공장을 짓고 새 둥지를 틀었다. 윤 대표는 “당시 사무용 가구 납품을 위해 서울 시내 10층 이상 건물은 모조리 찾아다녔다”며 “발로 뛰며 거래처 확보에 나선 결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사업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회사를 세운 지 12년 만인 1999년 최대 거래처인 대기업 건설사가 부도를 맞으며 길고 긴 시련의 시간이 시작됐다. 윤 대표는 “최대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이 한순간 휴지 조각이 되면서 10년간 번 돈을 몽땅 날렸다”며 “사비 10억 원을 들여 급한 어음을 막았지만, 재무 상황은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사세가 급격하게 쪼그라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0년 넘게 손발을 맞춰온 직원들과 함께 판매망 확대에 총력을 쏟았다. 안정된 기술력을 이어가면서 거래처가 요구한 납기는 철저하게 준수했다. 윤 대표를 찾는 거래처가 다시 늘면서 2003년 별도의 판매 법인까지 세웠다.
다시 안정세를 찾아가던 네오퍼스는 2000년대 중반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중국에서 값싼 가구가 밀려들어오고 초대형 가구유통 기업의 시장 영향력이 커지면서 경영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인건비마저 뛰면서 가구 산업 전체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타개책이 절실했다.
윤 대표는 “일반적인 실생활, 사무 가구로 승부를 걸던 시대는 지나갔음을 실감했다”며 “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는데,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디자인 가구에 시선이 꽂혔다”고 말했다.
2007년 회사명을 지금의 상호로 바꾸고 벤처기업인증도 받으며 디자인 가구 제조업체로 체질을 바꿔나갔다. 그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계약조달 전문 플랫폼인 조달청 업체 등록도 마쳤다. 20년간 사무용 가구를 만들면서 쌓아온 노하우가 디자인 가구 입찰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납품 계약을 잇따라 따냈다. 윤 대표는 디자인 연구개발(R&D)에 더욱 집중했다.
그는 “물량을 대량으로 받아오기보다는 물량이 적더라도 거래처가 원하는 방향의 디자인을 접목해 가구를 생산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부가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제품개발부터 제조, 유통 모든 부서에 디자인 전공자를 20% 이상 배치했다. 연구와 개발단계부터 설계 시공까지 도맡아 진행하는 ‘1시스템’ 품질관리도 도입했다. 가구 업계에서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매출의 6~7%를 디자인 R&D 비용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약 1,500종의 오피스와 아파트 디자인 가구, 조달 제품 등을 개발했다. 조달우수제품인증, 친환경인증 제품 타이틀도 따냈다. 색다른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면서 지금은 최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해 대기업 건설사, 대학교, 서울시청 등 공공기관까지 전국 2,000여 곳에 가구를 납품하고 있다. 국립세종도서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한국잡월드 등 유명 건축물에도 네오퍼스의 디자인 가구가 사용됐다. 2020년엔 70억 원 규모의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라운지 가구공사 수주를 따내는 ‘대박’을 터뜨렸다.
네오퍼스는 현재 조달 시장과 민간 시장을 합쳐 연 매출 300억 원이 넘는 기업으로 커졌다. 직원도 100명이 넘는다. 윤 대표는 지금의 공을 길게는 20년 넘게 곁을 지킨 직원들에게 돌린다. 그는 “최근 유례없는 원자잿값과 인건비 폭등으로 어려움이 큰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직원들과 똘똘 뭉쳐 위기를 건널 것”이라며 “함께 해준 직원들에게 앞으로 회사의 이익과 주식을 나눠줄 방침”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