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순살 아파트'(철근이 누락된 아파트) 공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전국 아파트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부실 시공 아파트가 적지 않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게 확인됐다. 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참사 발생 이후 올해까지 총 4건의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공통적으로 ①무리한 공기 단축 ②철근 등 자재 아끼기 ③부실 설계 및 시공, 감리 등이 사고 원인으로 꼽혔다. 고질적인 부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파트 붕괴 참사는 50여 년째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70년 4월 8일. 이날 오전 6시 40분 서울 마포구 창천동 와우산 기슭(현 와우공원)의 시민아파트 한 동이 준공 3개월여 만에 붕괴됐다. 이 사고로 아파트 주민과 인근 판자촌 주민 등 총 33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사고 조사 결과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5층짜리 아파트를 지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70개 철근 중 5개만 있었다. 5층짜리 아파트 한 동당 책정된 시공 예산은 1,100만 원. 당시 자동차 한 대 가격이 100만 원이었던 물가를 감안하면 자동차 10대 살 돈으로 아파트 한 동을 지으라는 얘기다. 그나마도 아파트 시공을 맡은 무면허 건설업자는 한 동당 125만 원을 착복해 공무원에게 뇌물로 썼다.
공사 기간도 턱없이 짧았다. 당시 하루빨리 판잣집을 헐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19개 동으로 이뤄진 와우아파트 단지는 6개월 만에 완공됐다. 당시 경사가 가팔랐던 언덕에 지어진 아파트의 지반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파트가 붕괴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두 번째 아파트 붕괴 참사는 1993년 충북 청주에서 발생했다. 준공된 지 12년 된 우암상가아파트에서 1993년 1월 7일 오전 1시 8분쯤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LP가스통으로 옮겨붙었고, 화재 발생 1시간 만에 폭발과 함께 4층짜리 아파트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48명이 다치고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건물에는 지하와 지상 1층에 53개의 점포가 있었고, 지상 2~4층에는 59가구 282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화재가 발단이 됐지만 붕괴로 이어진 원인은 따로 있었다. 당시 자금난으로 건축업자가 3회 이상 바뀌면서 그때마다 설계가 변경됐다. 기초 구조는 보강하지 않고 건물을 증축했고, 상가 수를 늘리기 위해 기둥을 없앴다. 시공도 제멋대로였다. 붕괴 후 조사에서 철근 간격과 개수 등이 기존 설계안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용 절감을 위해 부실 자재를 썼다. 구조 작업에서 드러난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시멘트보다 자갈과 나뭇조각 등 이물질이 다량 들어 있었다. 실제 시료 분석 결과 콘크리트 평균 압축 강도가 규정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참사다. 이 참사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했다. 지하 3층~지상 5층 백화점이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단 20초였다. 백화점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무량판 구조'로 시공됐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 공법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철근 누락 등 부실 시공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무량판 구조는 기둥 위에 보 없이 천장을 얹는 시공 방식이다. 이 구조는 지지력을 높이기 위해 기둥과 천장이 만나는 접합부에 L자형 철근을 사용해야 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ㅡ자형 철근이 사용됐다. 에스컬레이터 주변 기둥에는 16개의 철근이 들어가야 했지만, 실제로는 8개만 사용되기도 했다.
설계도 수시로 바뀌었다. 착공 전 설계도면이 완성되는 게 상식이지만, 삼풍백화점은 건축주의 요구로 설계 변경이 잦았다. 종합상가로 설계된 건물은 층수를 올리고, 면적을 늘려 백화점으로 시공됐다. 그 결과 4층짜리 건물은 5층으로 완공됐고, 기둥 지름은 25%나 줄었다. 옥상에는 냉각탑 등 200톤이 넘는 시설이 설치됐다. 늘어난 하중으로 참사 발생 전 건물이 기운다는 전조도 있었다.
최초의 순살아파트가 붕괴된 지 53년이 지났지만, 아파트 붕괴는 현재 진행 중이다. 오히려 최첨단 공법으로 고층 건물이 많아지면서 붕괴 위험은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월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현장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38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인 이 아파트 한 동 16개 층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6명의 현장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원인은 부실 설계, 시공, 감리가 합쳐진 총체적 인재로 결론났다. 여기에 공사 인허가 과정에서 불법 재하도급 등의 비리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4월 29일 오후 11시 30분에는 인천 검단신도시 LH아파트 지하주차장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피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32개가 들어갔어야 할 전단보강근이 15개가 미적용됐다. 지지대가 부실해지면서 흙의 하중을 버티지 못한 구조물이 무너진 것이다.
반복되는 아파트 붕괴 사고에 시민들은 "자다가 죽는 것 아닌가", "언제 무너질 지 모르겠다" 등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아파트 건설은 수조 원이 들어가는 대형 공사인데다, 사업 발주부터 설계, 시공, 감리 등 수많은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부실 여부를 찾아내기 어렵다. 게다가 한 번 지으면 허물고 다시 짓기 어렵고, 수십 년간 유지되기 때문에 부실이 적발되더라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실이 발생하면 피해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를 비롯해 원가 절감이 중요해지면서 부실 시공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며 "무량판 구조도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잘 쓰이지 않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지하주차장을 중심으로 다시 적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파트 입주자 커뮤니티에서도 안전 여부를 요청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는 최근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는지 여부를 묻는 문의가 늘어났다. 또 철근 누락이 없는지 검사를 요청하는 아파트 입주자들도 많다. 국내 인구 60%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민간 아파트 188개 단지와 현재 공사 중인 105개 단지를 대상으로 부실시공 여부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