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뒤돌아보고, 모자 쓴 사람 의심하고..." 일상 강타한 '흉기난동' 공포

입력
2023.08.05 04:30
1면
주민들 "조용한 곳인데 이런 일이..." 충격
시민들 출퇴근 택시 이용하거나 재택 근무
아이들 학원 안 보내고 외출도 꺼려


"밖에서 걷다가 누가 뒤에서 뛰어오는데 화들짝 놀랐어요.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 다 못 믿겠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전날 사고를 목격한 직장인 김모씨

경기 성남시 서현역 AK플라자에서 3일 발생한 흉기난동의 목격자 김모(29)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과 피해자, 경찰, 구급대원들로 아수라장이 됐던 현장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다. 김씨는 4일 출근길에도 '혹시 다른 사건이 또 발생해 내가 다치진 않을까' 우려하며 내내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등 뒤를 수십 번씩 돌아보고, 일부러 사람이 없는 길을 택해 걸었다. 김씨는 "예전엔 살인 예고글이 인터넷에 올라와도 무시하곤 했는데 이젠 '진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살인 예고까지 이어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시민들은 혹시 모를 사고를 피하기 위해 외출을 삼가거나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누구나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일상이 흔들리는 상태다.

전날 사건이 발생한 AK플라자는 사고의 흔적이 남은 채로 적막한 모습이었다. 1층의 매장들은 문을 닫았고 10명 남짓한 사람들만 "이곳이 사건 장소다, 무섭다"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특별히 배치된 경비 인력 30여 명을 제외하고는 이전과 같은 인파를 보기는 어려웠다. 백화점에 근무하는 김모(30)씨는 "오늘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평상시의 20% 수준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백화점 인근 곳곳에 핏자국이 여전했고, 경찰의 출입통제선(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분당구 이매동에 사는 박지윤(23)씨는 "지인들과 자주 만나던 동네인데 이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며 "평소와 다르게 모자를 쓴 사람만 봐도 피하게 되고, 빨리 걷거나 이어폰도 절대 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당구 정자동에서 10년 넘게 일한 지모(60)씨도 "아파트 단지가 많은 주거지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확 무서워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지 않거나, 대중교통 대신 택시만 이용하는 시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경기 지역에서 어린이 등·하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권모(53)씨는 "저학년은 학원 하원시간에 차를 타는 대신 엄마가 와서 직접 데리고 갔고, '당분간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내겠다'는 전화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늘 아이들로 붐비던 사건 현장 인근 아파트 단지 놀이터는 이날 내내 한산한 모습이었다.

직장인 이모(25)씨는 수년간 출퇴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전날부턴 택시만으로 이동하고 있다. 왕복 3만2,000원을 내더라도 길거리에 혼자 다니고 싶지 않아서다. 서울 강남구 등 '살인 예고글'에 언급된 지역 내 일부 회사들은 이날 재택근무를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스스로의 대응만으로는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다. 권씨는 "살인 예고를 하는 사람들은 미리 잡기라도 하는데 사고가 터진 곳들은 예고도 없었다"며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사고를 목격한 김씨는 "신림동 사건 때와 달리 서현역 사건을 보니, 진짜로 모방 범죄가 계속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이 즉시 총기로 대응하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포로 사회와 타인에 대한 신뢰감 자체가 무너졌다"며 "처벌을 강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치안 좋은 국가'가 아닌 각박하고 불안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