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을 마치고 5일 귀국길에 오른다. 월드컵 본선 2연속 3전 전패라는 불명예를 안을 뻔한 대표팀은 '강호' 독일을 탈락시키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4년 전 대회와 비교해 달라진 거라곤 '승점 1'을 챙겼을 뿐이다. 여자 축구대표팀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팀은 지난 3일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1-1로 귀중한 무승부를 챙겼다. 월드컵 본선 4번째 출전 만에 첫 선제골도 나왔다. 무엇보다 FIFA 랭킹 2위이자 '우승 후보'로 꼽히던 독일과 대등한 승부를 펼친 건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조차 "독일이 탈락하는 이변을 한국이 만들었다"며 5년 전 남자 축구가 2019 러시아월드컵에서 써낸 '카잔의 기적'을 곱씹었다. 일본은 이 대회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해 우승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축구대표팀의 결과는 4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 최하위로 16강 탈락했고 조별리그 1, 2차전 무득점·3차전 1득점 결과도 비슷하다. 4년 전보다 더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벨 감독의 책임론이 떠오른 이유다. 벨 감독은 1차전을 패한 뒤 "(선수들이) 생각의 속도나 결정이 느렸다. 매우 실망스럽다"며 선수들의 잘못을 짚었다. 호주대표팀 출신 헤더 개리오크는 "선수들 실수만 지적하고,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벨 감독은 2연패 뒤엔 "WK리그(여자 실업축구) 시스템 전체가 재편돼야 한다"며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맞는 말일지언정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뜬금없고, 무책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형욱 축구 해설위원은 유튜브 채널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라며 강하게 꼬집었다.
사실 대표팀을 꾸릴 때부터 우려는 있었다. 30대 중반 '황금세대' 선수 중심으로 발탁해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평균 나이 28.9세로 이번 대회 32개국 중 최고령 대표팀이 됐다. 모로코(평균 연령 25.5세)와 콜롬비아(26.1세), 독일(26.3세)에 비해 체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강도' 훈련 효과는 미비했다. 1차전 패배 후 전문가들은 2차전에 천가람과 페어 등 '젊은 피' 수혈을 진단했다. 그러나 벨 감독은 보수적인 선수 기용을 이어갔고, 2연패 뒤에야 천가람과 페어를 선발 출전시켰다. 한 축구 관계자는 "독일전에서의 분투도 우리 전술의 승리보다는 꼭 이겨야 하는 독일의 조급함과 실수가 더해진 결과"라고 짚기도 했다.
벨 감독은 2019년 10월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2024년까지 계약도 연장한 상태다. 당장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10월엔 2024 파리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있다. 과연 벨 감독이 언제부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지 축구팬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