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규정 위반 탓에 벌점을 많이 받았던 감리업체(설계대로 시공되는지를 관리감독하는 업체) 중 절반 이상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재직 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상당수 업체는 이번에 철근 누락이 발견된 15개 단지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벌점을 받았음에도 LH 계약을 따낸 것인데, 이 과정에서 전관을 이용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4일 한국일보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받은 'LH의 최근 5년간 건설사업관리용역(감리)업자 벌점 부과 현황'을 분석한 결과, 벌점 상위 20곳 중 11곳(55%)이 'LH 전관업체'였다. LH 퇴직자들이 현재 근무 중이거나 임원을 지냈던 곳이다. 특히 이 중 4곳은 회장 또는 대표가 LH 전관 출신이었다.
전관업체 11곳에 5년간 부과된 벌점 사안 36건을 살펴봤더니 △사용자재 적합성의 검토 및 확인 소홀이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설계도서 및 각종 기준대로 시공됐는지 단계별 확인을 소홀히 한 사안이 6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품질관리계획 수립과 시험 성과 검토 불철저(3건) △하도급 관리 소홀(3건) △시공사 안전관리 확인 소홀(2건) 등이 문제로 적발됐다.
전관업체의 부실한 감리는 이번에 철근 누락으로 말썽이 난 단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전관업체 11곳 중 7곳은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철근 누락 공공주택 15개 단지' 중 5개 단지의 감리·설계에 참여했다. 업체 2곳은 설계 단계에서 구조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5개 업체는 감리에 참여해 일부는 준공 전 설계 및 시공 부실을 잡아내지 못했다.
벌점이 가장 많은 업체는 총 6.28점을 받은 K사였는데, 이곳에선 회장을 비롯한 5명의 전직 LH 임직원이 근무했다. 벌점 2위 업체(3.83)에선 3명, 3위 업체(3.44)에선 8명의 LH 출신이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리업체들은 벌점을 받아도 취소 소송으로 효력을 정지시키고, 계속 입찰에 뛰어들어 용역을 따낸 것으로 나타났다. 세 업체는 5년간 각각 44건(968억6,900만 원), 38건(726억4,177만 원), 33건(674억2,434만 원)의 LH 공사를 수주했다.
유 의원은 "전관업체가 다수의 벌점을 받고도 LH 계약을 따내는 것을 보면 결국 전관 특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LH 전관 특혜 의혹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 개편과 함께, 설계·감리·시공사의 유착을 방지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 부장은 "전관 업체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기술·가격 경쟁이 아닌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업을 따내면서, 건설업계와 시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LH는 이날 15개 단지 철근 누락에 관여한 업체 74곳에 대해 부실시공(건설기술진흥법·건축법·주택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15개 단지에서 전관예우 의혹이 제기된 업체들의 선정절차와 심사과정을 분석해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