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강등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이 휘청거렸다. 피치는 정부 부채한도를 두고 미 의회가 극한 대립을 벌여 채무불이행 직전까지 가는 거버넌스 불안과 정치 양극화 심화를 강등 이유로 들었다. 이에 따라 3대 신용평가사 중 미국이 최고등급인 곳은 무디스만 남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2년 전 한 단계 낮춘 후 유지하고 있는데, 그 당시 일주일 사이 미 증시가 15%, 코스피도 17% 폭락했다.
□이번에도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하지만 강등 하루가 지난 후부터 “오히려 주식 매수 기회”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미 금융계는 여유만만하다. 이런 자신감은 미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6개 다른 주요 통화와 상대적 가치를 비교하는 미국 달러 지수는 신용등급 강등 이후 잠시 주춤하다 상승세로 전환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가 신용등급 강등을 두고 “웃기는 일로 별로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마음을 졸이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환율 불안에 대한 우려가 크다. 3일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0일 이후 처음으로 장 중 한때 1,300원 선을 넘어서는 등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국채금리도 이틀 연속 상승세다.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최고로 믿을 만한 자산은 미국 달러밖에 없다’는 오랜 믿음이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해도 오히려 미 달러를 사게 만든다.
□기축 통화 달러의 위상은 미국 신용등급과도 분리될 정도로 막강함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세계에 달러 공급을 늘린다면 결국 언젠가는 달러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반면 달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 정책으로 전환한다면 달러 유통량이 줄어들어 기축 통화 지위가 위태로워진다. 이런 진퇴양난 상황을 ‘트리핀 딜레마’라고 부른다. 현재는 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미 달러의 위상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