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I, Daniel Brake)'에서 주인공은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쳇바퀴를 돌다가, 건강 악화로 더 이상 그마저도 힘들게 된 주인공은 결국 죽음에 내몰린다. 관료화된 복지제도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피폐화시키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복지국가에서 제도화돼 있는 실업급여는 또 다른 말로 '구직급여'이다.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직업 훈련을 받고, 구직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직자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국가는 이를 감독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쓴다.
최근 실업급여의 하한선을 80%에서 60%로 낮추기 위한 정책공청회에서,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시럽급여'라는 비아냥에 더해 담당 공무원은 "여자분들, 실업급여받는 도중에 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산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이런 막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실직자는 불요불급한 지출을 넘어 사치와 여유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 실직자 혐오가 있다. 실업급여는 실직에 대비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일하는 동안 적립한 고용보험이 그 재원이다. 공무원은 제도적 기준에 따라 지급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늘어나고 반복적으로 수급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원인은, 파편화되고 불안정한 노동시장 때문이다. 구직활동이 의미가 있으려면 일자리가 받쳐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부정수급자가 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처럼 고정된 일터와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이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구조적 고용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렇듯 불안정한 노동의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을 떠받쳐줄 수단으로 실업급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면, 논란은 여전하지만 '기본소득'의 취지를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자는 아이디어로,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와이 컴비네이터가 2016년부터 실험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 성남시, 경기도에서 청년 배당 등의 형태로 시도된 바 있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는 전 국민이 기본소득과 유사한 정책을 경험하기도 했다. 포퓰리즘 프레임에 갇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조차 슬그머니 뒤로 빼놓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탈일자리' 시대가 오고 있다. 건전한 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동일시하는 우리의 노동관도 변화할 때가 왔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굳건한 노동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실직은 개인의 부지런함의 문제로 치부된다. 기본소득 또한 도입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일부 부정수급 사례를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 '시럽급여'라는 비아냥 대신, 구조적 실업의 일상화에 대응해 실직자들의 삶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탈일자리 시대로의 전환에 대비한 복지시스템을 재설계하고, 심화하는 불평등을 해결해 나가는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기본소득은 그 길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