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30도를 넘으면 철 바닥에서 열이 올라오고 나르는 철근도 달궈져 체감으로 50도 가까이 오릅니다. 지금도 현장 노동자들은 열사병으로 많이 실려가고 있습니다.”(철근노동자 장석문씨)
“지난주에도 강원도 원주에서 전기일을 하던 동료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아내와 딸을 알아보지 못했고, 뇌경색 진단을 받은 후 지금까지 의식이 없습니다.”(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폭염 노동 실태’ 기자회견에서 나온 노동자의 목소리다. 연일 33도를 웃도는 살인적 더위 속에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늦어지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지난 1일에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폭염법 제정을 촉구하며 파업했고, 3일에는 배달노동자들이 폭염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인 ‘산업안전보건 규칙’은 체감온도 33도 이상의 폭염이 발생할 경우 노동자에게 물과 그늘, 휴식시간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는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폭염이 발생하면 매시간 15분씩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가장 더운 오후 2~5시 야외 작업을 중지하라는 가이드라인도 별도로 마련했다. 모두 권고 수준에 그쳐 강제력이 없다.
건설노조가 건설노동자 3,2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1%는 ‘체감온도 35도 이상에도 중단 없이 일한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 응답률(58%)보다 23%포인트나 급증한 수치로, 작업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폭염이 발생한 경우 ‘매 시간 10~15분씩 규칙적으로 쉰다’고 응답한 비율은 25%뿐이었다.
폭염 대책이 헛돌면서 노동자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도 뚜렷이 감지된다. 응답자 55%가 ‘본인이나 동료가 폭염으로 실신하는 등 이상징후를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75%는 폭염기에 ‘어지럼증을 겪었다’고 답했고, 두통(38%), 메스꺼움(35%) 등의 증상을 겪은 노동자도 상당했다. ‘정부의 폭염 대책이 건설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이유’로는 응답자 61%가 ‘가이드라인이 법제화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하기 전에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게 노동 현장의 아우성이다. 배달노동자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은 3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배달노동자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는다. 폭염 특보가 발효될 경우 배달노동자들이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지난 1일에는 쿠팡 물류센터 노조가 ‘폭염 때 1시간에 10분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호소하며 파업을 벌였다.
국회에는 △폭염 시 작업 일시 중지 △휴게시간 의무화 등을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됐으나, 논의는 더디다. 류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정부가 매년 폭염 경보를 발령하고 폭염 가이드라인도 적용해왔지만 사망자는 줄어들지 않았다”며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류현철 작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법 개정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행 고용부 가이드라인을 강력하게 적용할 방법을 찾으면서 법 개정을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