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맞고도 혼자 참는다... '특수교사다움' 강요에 멍드는 교권 [벼랑 끝 특수교사]

입력
2023.08.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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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폭언 피해 비일비재 특수교사 실태
10명 중 9명 부상... 75% "혼자 수습"
"모르고 교사했냐" 인식에 속앓이만
도전행동 대처 매뉴얼도 없어 전전긍긍

경기 부천시의 고교 특수학급 A교사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생 B군에게 8회에 걸쳐 가슴을 맞거나 발목을 걷어차이는 폭행을 당했다. 학생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도 있었다. 보건교사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B군의 행동을 교육활동 침해로 인정하고 보호자와 함께 심리치료 4회를 받도록 처분했지만 B군 부모는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A교사는 성추행 피해 충격과 법적 대응 과정의 스트레스로 심리치료를 받았다.

특수교사 교권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는 교육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수교사는 지적장애·발달지체·자폐 등이 있는 학생들의 특성에 적합한 교육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성을 막론한 장애학생의 '도전행동'(문제행동),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이나 비협조로 특수교사들이 교권 침해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교사 지원책이나 예방책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교단에서는 교사에게 문제 해결 책임을 전적으로 지우는 관행에서 벗어나 특수교육 특성을 감안한 현장 매뉴얼, 인력·제도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청한다.

도전행동 대응 매뉴얼 없어 속수무책

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특수교사노조는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이틀간 전국 유치원·초중고교 특수교사 2,957명을 상대로 교육활동 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이날 결과를 공개했다. 특수교사의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해 전국 단위의 조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한국특수교육원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국내 특수교사는 2만5,599명이며, 이들이 가르치는 학생(특수교육대상자)은 10만9,703명이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88.8%)은 교육활동 중 학생의 도전행동에 부상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수교사들은 학생이 고위험 행동을 할 때 단계별로 적정하게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매뉴얼이 없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특수교사는 다른 학생을 때리는 장애학생을 말리다 손가락을 세게 물리자 손가락을 빼내려 학생 얼굴을 돌리는 과정에서 학생 뺨에 손톱자국을 냈다. 학생 부모는 이를 문제 삼아 교사를 경찰에 신고했고, 학교 관리자도 "상처를 냈으니 무조건 교사 잘못"이라 질타했다. 궁지에 몰린 교사는 결국 육아휴직을 냈다. 정원화 전국특수교사노조 정책실장은 "한국특수교육원이 발간한 도전행동 매뉴얼이 있지만 '교사가 머리채 잡혔을 때 아이의 손가락을 젖혀 빠져나오라'는 등 그대로 따랐다가는 아동학대 혐의를 받기 십상인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학생의 도전행동이 장애로 인한 것인지 고의성이 있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다고 보는 시선도 특수교사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특수교사 67.1%는 '고의성이 의심되는 교육활동 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개인적 판단만으로 학생 부모에게 훈육을 당부하거나 피해 사례를 교권보호위에 부치기란 쉽지 않다.



"'특수교사다움' 강요 분위기… 대응 포기하게 돼"

특수교사들은 '도전행동 중재(대응)' 과정에 혼자 책임지는 구조도 부담이 크다고 호소한다. 노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명 중 3명(75.6%)이 도전행동 중재 때 '지원받지 못한다'고 했다. 교내 사회복무요원 등 지원인력이 있지만 전국 특수학급 수(3만6,288개)의 절반에 못 미치는 1만5,785명에 그쳐 실질적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들 인력이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점도 문제다. 경북의 특수학교 교사는 "사회복무요원이 대응 과정에서 학생과 문제가 생기면 더 난감해지고 그 관리 책임 또한 특수교사가 짊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특수학급이라면 비상벨도 없는 등 도전행동 대응 체제가 더 미비하고 특수교사에게 수습 책임을 전가하려는 학교 관리자의 방관적 태도도 더 심하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학부모가 학생 이상으로 교권 침해 문제를 일으키는 건 특수교육 현장도 마찬가지. 이번 설문조사에서 특수교사들이 밝힌 학부모에 의한 피해 사례는 크게 ①수업 간섭 및 자녀 문제 대응 비협조 ②자기 아이만을 위한 과도한 민원 및 녹음을 통한 신고 압박으로 요약된다. 중증 장애학생에게 잦은 폭행을 당했다는 한 특수교사는 학부모에게 가정 훈육을 요청하려다가 되레 "잘못된 행동도 사랑으로 감싸달라. 그런 교육 안 받았느냐"며 훈계를 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특수교사다움'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학교 안팎의 분위기도 특수교사의 교권 침해 대응을 억누르는 요인 중 하나다. 자폐장애 초등학생에게 2년간 60여 회 상해를 입은 서울 지역 특수교사는 10일간 병원 치료를 받고 복귀한 교무실에서 "(지도 과정에) 맞는 것은 특수교사 숙명 아니냐. 학생을 겁내고 병가 내면 자질이 없다"는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참는 게 당연시되다 보니 교권 침해를 당해도 자신의 역량 부족부터 탓하게 된다는 것이 상당수 특수교사의 공통된 토로다.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이 매년 바뀌는 일반 학급과 달리, 특수교사는 통상 3년 이상 장애 학생을 맡아 학부모와도 장기간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마찰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점,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응했다가 아동학대나 장애인 인권 침해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점도 특수교사를 움츠리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 "교사와 부모 대립구도 안 돼"

특수교사의 수세적 입지는 피해구제 수단 미활용으로 이어진다. 노조 설문조사에서 '교육활동 침해로 교권보호위가 열렸느냐'는 물음에 96.3%가 '없었다'고 답했다. 교보위가 열리지 않은 이유로 '스스로 포기했다'는 답이 62.3%로 가장 많았고, '교장 등의 거부나 회유'가 20.2%로 뒤이었다. 부상 피해 경험이 있는 교사 96.5%는 '치료비 지원을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 특수교사들이 병가 등으로 교단을 벗어나는 길을 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간제 교사나 신규 교사가 빈자리를 채우게 되면 도전행동 학생 지도는 더욱 어려워지기 쉽다. 이들은 경험이 부족한 데다가 학생의 폭력·폭언, 학교 관리자의 교권 침해에 더 취약한 편이라서다.

특수교사들은 학생의 도전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매뉴얼 보급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등의 사례를 참고해 △도전행동 중재 시 교육활동 범위에 대한 지침 △자해 및 상해 행위 시 신체적 개입 근거 등이 매뉴얼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교육활동 침해 유형 및 기준을 제시할 특수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교육부도 이달 내놓을 교권보호 종합대책에 특수교사를 위한 매뉴얼 마련을 포함할 방침이다.

교육계에선 학부모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청도 나온다. 학생이 도전행동을 할 경우 교사와 학교에 반드시 협력할 책임을 부여하고,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자녀 치료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학부모 민원에 학교 관리자가 개입하도록 하고, 교육청 및 교육지원청에 소속된 행동중재전문가를 학교 현장에 즉각 투입할 수 있게끔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특수학급 과밀화 등으로 장애학생 특성 및 발달단계를 고려한 맞춤형 교육이 미흡한 현실을 감안, 교사와 부모 간 '상호 포용'의 길을 터주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최나리 광주교대 특수·통합교육학과 교수는 "교사와 부모가 대립하기보다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며 장애 인식 개선과 통합교육지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