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 사는 김모(24)씨는 지난달 23일 아침 기상했다가 100통 넘게 쌓여 있는 카카오톡 메시지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날 휴대폰이 꺼진 상태로 잠이 들었는데,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으로 예민해진 친구들이 연락이 안 되자 밤새 안부를 물은 것이다. 불안감이 커진 그와 친구들은 이참에 상대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위치공유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기로 했다. 김씨는 1일 “잊을 만하면 사건·사고가 터져 이렇게라도 해야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폭우에 목숨을 잃고, 무차별 흉기난동에 바깥나들이를 하기도 무서운 세상이다. 사건·사고는 세대도 가리지 않는다. ‘돌발 공포’가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 첨단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스스로 몸을 지키고 있다. 정보기술(IT) 보호장치를 최대한 활용해 안전을 공유하고, 혹시 모를 위협에 대처한다.
사실 위치공유앱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3년 전부터 10대를 중심으로 유행했지만, 상대방 위치는 물론 휴대폰 충전 상태, 과거 동선, 체류시간 등을 낱낱이 알 수 있어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적지 않았다. 위치공유앱이 단초가 된 스토킹 범죄 피해 사례도 많아 누구나 애용하는 소프트웨어는 아니었다.
올 들어 기류가 달라졌다. 특히 지난달 오송 침수사고와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안전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청년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IT 부산물을 찾다가 위치공유앱을 적임자로 택했다.
실제 데이터분석플랫폼 ‘데이터에이아이’에 따르면, 1020세대가 주로 쓰는 위치공유앱 ‘J’의 이용 규모는 주요 사건·사고 발생과 함께 상승곡선을 그렸다. 오송 사고 발생 하루 전인 지난달 14일 1만9,010명이던 이용자 수는 이틀간 15%가량 늘어 16일 2만2,485명을 기록했다. 신림동 사건 역시 발생 시점(7월 21일)을 전후해 이용자가 1,300명 정도 증가했다.
이들이 IT 기술에 기대는 효과는 ‘심리적 안정’이다. 대학생 김서연(24)씨는 “언제든 친구들 위치와 체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 연락이 되지 않아도 불안감이 덜하다”고 했다. 대학생 이모(23)씨도 “또래 청년들이 불의의 사고로 애꿎은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니 앱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위치공유앱 외에 다른 자구책을 강구하는 젊은 층도 있다. 취업준비생 조모(25)씨는 “단체대화방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친구가 갑자기 말이 없으면 괜히 불안해져, 카카오톡 채팅에 있는 ‘언급하기’ 기능을 사용해 안부를 묻는 빈도가 늘었다”고 말했다. 위급상황 발생 시 자동으로 보호자에게 문자를 보내는 스마트워치 기능을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20대도 많아졌다고 한다.
청년세대가 개인의 안위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건 ‘이태원 참사’ 등 누적된 사고 여파로 이들도 사회적 재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탓이 크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낙관성과 안정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존재인데, 젊은 층이 각종 참사의 주된 피해자가 되면서 생존 방법을 찾는 심리적 방어 조치”라고 진단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체가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말뿐인 정부 대책에 젊은이들이 실망한 결과”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