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처벌법에 대한 개정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법안 제정 당시 이해관계자 중 하나인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생략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만들어진 법을 약 10년간 이어오면서도 교육 현장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민원으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할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의 기회는 마련되지 않았다.
아동학대처벌법을 만든 계기는 이른바 '서현이 사건'으로 알려진 2013년 10월 울산 아동학대 살해 사건이다. 당시 8세였던 의붓딸을 계모가 지속적으로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국회는 그제야 안홍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2012년 9월 발의한 아동학대처벌법 제정안을 거의 1년 만에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정안의 핵심은 '누구든지 아동학대 정황을 알게 될 경우 수사기관 등에 신고해야 할 의무'를 신설하고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대해선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다.
법안 심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첫 논의부터 국회 통과까지 딱 2주가 걸렸을 뿐이다. 이 때문에 제정법이라면 개최됐어야 할 공청회도 생략됐다. 그나마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소위에서 박범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사를 하면서 보니까 혹시라도 미진한 부분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며 공청회 개최를 주장했으나, 법무부의 반대 의견에 공청회 대신 간담회가 열렸다. 하지만 간담회에는 아동권리 전문가·로스쿨 교수만 참여해 교육계 목소리는 반영될 기회가 없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관계자는 "제정 당시 입법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교원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항이 반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자는 입법 취지인 만큼 제정 당시 교원의 방어권 관련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을 수 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정서적 학대'와 같이 객관적 기준이 없는 아동학대 범위, 그로 인한 교원에 대한 무분별한 신고 등이 논란이 됐지만 법안 개정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의 신고 독려를 위해 2016년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 신고자 등에게 아동학대 범죄 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추가됐을 뿐이다. 오히려 해당 조항은 학부모의 교원을 향한 무차별적 신고로 악용될 여지를 제공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수년간 교육부·교육청·국회 등에 지속적으로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응답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서이초 사건 발생 직전에도 여야는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정이 되지 않아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다. 지난 5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강득구 민주당 의원도 6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각 법안의 이름은 다르지만 두 개정안 모두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