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파키스탄 총선으로 가는 길이 테러로 물들 조짐이다. 7월 30일(현지시간) 정당 행사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참석자 약 500명 중 200명가량이 죽거나 다쳤다. 선거 테러의 신호탄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경쟁 종파 지도자를 노린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다. 선거 흥행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 CNN방송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슬람 강경파 정치 지도자들이 모인 파키스탄 북서부 아프가니스탄 접경 카르카이버·파크쿤트와주(州) 바자우르의 정당 행사장에서 폭탄이 터졌다. 페로즈 자말 파키스탄 지방 정보부 장관은 AP에 “44명이 순교했고 거의 20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확인된 사망자는 31일 54명으로 늘었다. 정당의 지역 수장인 마울라나 지아울라도 숨졌다. 경찰은 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은 자살 테러범이 당 고위 지도자들이 앉아 있던 무대 근처에서 폭탄을 터뜨렸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파키스탄 연합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이슬람교 우익 정당 자미아트 울레마-에-이슬라미(JUIF)가 주최했다. 성평등 등의 현안에 극우적 입장을 취하는 정당이라는 게 미 워싱턴포스트(WP)의 소개다.
경찰이 추정하는 배후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이다. JUIF 지도자 마울라나 파즐루르 레만부터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가까운 성직자인 데다 정당 지역 인사 중 상당수가 친탈레반 성향이라는 게 미 뉴욕타임스(NYT) 분석인데, 탈레반과 IS는 앙숙 관계다. 이슬람 수니파 계열로 뿌리가 같은데도 미국과 이슬람 시아파에 대한 태도가 너무 온건하다며 IS가 탈레반을 매도하고, 탈레반은 IS에 사이비 종파 낙인을 찍었다.
원래 파키스탄 정부의 골칫거리는 탈레반이었다. 무장세력 ‘파키스탄 탈레반’(TTP)은 2014년 파키스탄 보안군 자녀들이 다니는 북서부 페샤와르 학교를 상대로 테러를 저질러 학생과 교사 147명을 죽였다.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올해 1월 페샤와르 경찰 단지 내 모스크(이슬람사원) 자폭 테러 뒤에도 TTP가 있었다는 관측이 많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TTP를 지원한다고 파키스탄 정부가 비난하며 최근 양측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전선은 더 복잡해졌다. 파키스탄 독립 언론 ‘호라산 다이어리’의 니잠 살라자이 기자는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에 “(IS가 이번 테러 배후로 밝혀진다면) 파키스탄 정부가 싸워야 할 전선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실제 11월 총선을 앞두고 테러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의 이슬람 극단주의 전문가 아스판디아르 미르는 NYT에 “총선은 각 집단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WP도 “무장단체와 극단주의 정당들이 선거를 앞두고 세력을 키우고 싶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테러가 극성일수록 총선 분위기는 가라앉을 공산이 크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4월 실각한 임란 칸 전 총리 세력과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연정이 대립하며 정치적 혼란에 빠진 상태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원(RSIS)의 압둘 바싯 선임 연구원은 NYT에 “맥 빠진 선거 캠페인과 저조한 투표 참여가 총선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게 파키스탄 정부 각오다. 마리윰 아우랑제브 내무장관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테러리스트의 종교는 테러리즘일 뿐”이라며 “테러리즘 종식은 파키스탄의 생존·통합에 아주 중요하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