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당국이 교권 침해 관련 송사에 휘말린 교사를 위해 소송비 지원 정책을 마련했지만 정작 교사들은 제도가 있는 줄 몰라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신청을 하면 심의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한 학부모와 마주해야 하는 제도상 문제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31일 이 같은 내용의 '교원 대상 법률 분쟁 사례 분석 및 교육청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부터 교권 침해 또는 침해 여지가 있는 사안으로 법률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교사에게 민형사상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교원안심공제' 서비스를 시행해 왔다. 민형사 재판 1~3심에 각각 최대 550만 원씩, 총 3,3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대상, 보장 범위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17개 시도교육청 모두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 제도가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 제도라고 평가했다. 보고서에는 "해외에서 교원을 상대로 발생하는 법률 분쟁의 대부분은 개별책임주의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교원 개인 대상 법률 분쟁에 대해 지원하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제도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연구진이 올해 3월 29일부터 열흘간 서울시교육청 소속 유치원·초중고교 교사 1,77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본인이 법률 분쟁을 겪었다고 응답한 51명 가운데 변호사 선임 비용을 지원받은 사례는 21%에 불과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경우도 38.3%에 달했다. 반면 응답자의 70%는 교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교권 침해 문제에 있어 사법적 대응 의지와 지원 제도 활용 사이에 괴리가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홍보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설문조사에서 '교육청의 법률 분쟁 지원 정책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74.6%가 몰랐다고 답했다. 교장들도 75%가 '모른다'고 응답했다. 제도의 존재를 모르는 교사들은 법률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상담한 대상으로 동료 교원(28%)과 교감(22.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변호사(12.2%), 가족 친구 등 지인(11.9%), 교장(9.2%) 순이었고 교육청을 꼽은 이는 6.1%뿐이었다.
연구진은 교사가 소송비를 지원받으려면 학교교권보호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송 상대방인 학부모와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교사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재판은 무죄로 결론 났지만 상대방을 다시 불러내는 절차에 부담을 느껴 (소송비 지원을) 포기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연구진은 최근 5년간(2018~2022년) '학교' '교원' '교사' 등으로 검색되는 판결문 1만6,751건을 조사했더니 교원이 당사자인 재판이 1,188건이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71.6%는 형사 사건이었고 이들 사건 대부분은 교원이 피고인이었다. 이런 사건은 다수가 아동학대 관련 사건(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위반)이거나 성비위 사건(아동청소년성보호법·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으로 분석됐다.
교단에서는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인해 수사기관에 불려가고 법정에 서는 일 자체를 막아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교사노조가 23~28일 서울 지역 교사 1만716명에게 교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물은 결과, 61%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꼽았다. 정서적 학대 조항을 폐지 또는 개정해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서 교사를 보호해 달라는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