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이 7월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와 달리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되 0.5%로 묶여있는 장기국채 수익률이 어느 정도 넘어도 이를 용인하기로 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금리 변동성이 커졌다. 일본은 그간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해 금리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으나 완화정책 일부 수정으로 각국 채권 금리가 상승했다. 엔화 강세를 예상해서인지 2018년 이후 올해 5년 만에 가장 많은 엔화 채권이 팔렸다.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와 채권 금리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여하간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다.
일반 시민이 시중은행에 계좌를 튼다면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에 계좌를 만든다. 시중은행은 중앙은행 계좌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을 인출해서 민간에 빌려준다. 평상시에는 시중은행들도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에서 이자를 받는다. 마이너스 기준금리정책을 실시하면 중앙은행은 시중은행 초과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주지 않고 보관료를 받는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500억 엔을 예치하면 0.1%인 5,000만 엔이 날아간다. 이 정책은 돈을 중앙은행에 맡겨두지 말고 민간에 대출해서 수요를 늘리라고 시중은행을 압박하기 위해 2016년에 도입됐다.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도입한 이 제도는 당시 유럽 여러 나라 중앙은행이 시행한 제도이나 일본을 제외하고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돈을 예금하면 보관료를 떼어 가는 마이너스 금리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최초의 마이너스 금리는 기원전 19~18세기 이집트에서 실시됐다. 구약 성서를 보면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된다. 그는 나일강 홍수와 가뭄이 일정 주기로 되풀이되는 점을 간파했다. 그는 가뭄을 대비해 당시 화폐였던 곡물을 창고에 저축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곡물을 맡기면 증서(점토판)를 내줘 다른 창고에서도 약속한 곡물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곡물을 지나치게 창고에 보관해 곡물가가 뛰자 이를 막기 위해 보관료를 물렸다.
경제학 이론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게젤세(Gessell’s Tax)’로 착상됐다. 1862년 벨기에 태생인 독일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은 현금을 쌓아두는 사람에게 주당 0.1%, 연 5.2%의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191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와 화폐 시스템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의 이론은 세금을 매겨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동일한 효과를 노린 셈이다. 사람들이 세금이 무서워 결국 돈을 쓰게 돼 경기가 좋아진다는 게 그의 이론의 요지다.
이런 게젤에 대해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존 케인즈는 색다른 평가를 했다. 게젤의 주장은 대공황 당시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둘의 이론은 불황 경제에 대한 처방전이란 측면에서 닮았다. 케인즈는 비록 게젤이 화폐의 본질이 뭔지 모르면서 착안한 이론이라고 비판했지만 후세 사람들이 카를 마르크스 주장보다 게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거라 평했다. 어빙 피셔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게젤의 아이디어를 극찬한 적이 있다. 이후 경제가 살아나고 금리가 상승하자 수십 년 동안 게젤의 아이디어는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
1972년 7월 스위스중앙은행은 비거주자의 예금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1차 오일쇼크 직전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자 안전자산인 스위스 프랑에 수요가 몰리며 자국 통화의 몸값이 고공행진했기 때문이다. 통화 강세는 수출 경쟁력 하락을 의미한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자금 유입을 막으려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강수를 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마이너스 금리가 만연해졌다. 2012년 7월 비(非)유로존 국가인 덴마크에서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급준비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2014년 6월 ECB가 유로존 19개국을 대상으로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도입한 뒤 스위스, 스웨덴이 뒤를 이었다. 2019년 하반기 주요 기사를 보면 마이너스 금리는 정책금리 수준에만 머물지 않았다.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의 국채 시장 금리는 모든 만기에 걸쳐 마이너스가 됐다. 마이너스 금리 국채 잔액은 2019년 8월 말 기준 약 16조8,000억 달러로 글로벌 전체 국채 발행의 34%를 차지했다. 이는 2018년 10월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한 규모다.
채권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말은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한 사람들은 원금에서 마이너스 금리만큼 제외한 금액을 돌려받게 돼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팔렸다니 채권 시장의 버블이 얼마나 심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화폐가치가 불안정하여 금, 외환, 부동산 같은 현물투자가 증가한다. 그래서였을까? 벨기에 출신 경제이론가 버나드 리테어는 ‘돈 그 영혼과 진실’에서 세상에서 돈의 가치가 늘 중시됐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디플레이션이 거론된 당시와 180도 다른 인플레이션 시대에 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마이너스 금리 뒤의 이론적 배경은 명확하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빌린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받는 전통과 반대이다. 일반적으로 금리는 화폐의 시간 가치와 화폐 구매력의 변화, 즉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의 기대 함수다. 물론 금리는 수반되는 신용 위험을 보상하기 위해 위험 프리미엄을 포함한다.
투자의 대가 하워드 막스의 메모에는 마이너스 금리가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담겨 있다. 제로 금리로 약발이 안 먹히자 각국은 더 많은 자극으로 세계 경제 침체를 살리고 싶었다. 당시 유럽과 선진국 중앙은행은 통화 약세로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금리인하 경쟁을 벌였다. 지속적 양적완화는 장기채 가격을 끌어올렸고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두려움에 쌓인 투자자들은 자국 경제와 기업에 투자하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2022년 인플레이션의 한가운데서 물가인상을 억제하는 와중에 마이너스 금리는 사라졌다. 지난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식한 스위스중앙은행은 이전에는 고액 예금자에게 이자를 주지 않고 오히려 0.75%의 수수료를 부과했었다. 덴마크도 고액 예금자에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대표 국가였다. 이제 이 두 나라도 인플레이션 앞에서 마이너스란 부호를 없앴다. 일본은행 전 수장인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지난해 12월 기존에 적용해 온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을 일부 변경했다. 수익률곡선 제어 정책은 중앙은행이 장기금리에 일정한 목표치를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채권을 매수·매도하는 정책이다. 당시 정책 대상인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 상한선을 0.25%에서 0.5%까지 높였다. 이번 7월엔 새 총재인 우에다 가즈오가 0.5% 이상도 용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됐던 일본 채권도 플러스로 바뀐 걸 보면 인플레이션의 위력을 절감한다.
장기채 폭락과 뱅크런으로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건을 회고하며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을 오간 혼돈의 세계사를 바라본다. 유럽에 만연했던 마이너스 금리의 목표는 경기 부양이었다. 사실상 유럽은 마이너스 금리로 경기가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돈을 쓰는 대신 금고에 넣거나 부동산만 사들였다. 2019년 덴마크의 마이너스 금리는 갈 데까지 갔었다. 주택담보대출인 모기지론 금리가 마이너스 금리로 출시됐었다. 돈을 빌리면 매년 원금이 깎였다. 부동산 가격이 튀지 않을 수 없었다. 스위스와 덴마크의 가계부채가 높은 것은 마이너스 금리와 높은 부동산값도 한몫한 까닭이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장 때문만은 아니다. 과도한 정부부채도 금리를 못 올리는 이유다. 기저효과로 미국 인플레이션이 한풀 꺾였다지만 위협 요소가 잠복해 있다. 이 와중에 자산 가격은 하락하다 금리 인상 종료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반등하고 있다. 긴축 효과의 끝이 어떠할지에 대해 많은 이의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경제가 침체할 것 같지 않지만 중국 경제가 반등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높은 생활물가와 고금리로 신음하는 서민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치길 바란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