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그맨 김병만, 악플러 고소 "긴 고통의 시간 견뎠죠"

입력
2023.07.28 09:30
본지와 단독 인터뷰 나선 김병만 
악플러들에 칼 빼들었다
각종 가짜뉴스로 마음 고생한 시간 고백

개그맨 김병만은 명실상부 '도전의 아이콘'이다. 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그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과 걱정이 동시에 솟구친다. 과거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 족장으로 병만족을 이끌었던 그는 MBN '경비행기 힐링 어드벤처-떴다! 캡틴 킴'(이하 '떴다! 캡틴 킴')으로 돌아와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실제로 김병만은 대한민국 연예인 최초로 사업용 비행기 조종사가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비행기로 뉴질랜드의 광활한 대자연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오직 비행기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비밀 여행지 등 미지의 세계를 속속들이 살펴본다.

비행기 조종사가 된 데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17년 7월 20일, 미국에서 스카이다이빙 인스트럭터(전문가) 교육을 마치고 솔로 비행을 하던 그는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강한 정신력 덕에 사고 발생 순간에도 의식을 잃지 않았다. 큰 수술 이후 재활 치료를 하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진 김병만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더 큰 목표를 세웠다. 막연한 꿈이었던 비행에 도전하기로 한 것. 인생에서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공부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정글의 법칙'을 촬영하면서도 여러 번 위기 상황은 있었다. 생사를 오갈 수 있는 아찔한 순간들을 겪으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김병만의 노력과 진심을 알고 있기에 지금도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김병만은 최근 회사(스카이터틀)를 세워 독립했는데 이 회사의 이사인 그의 매니저도 '정글의 법칙' 출연 당시 수중 감독이었다. 또한 음향감독은 김병만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수입을 챙겨주기 위해 김병만이 먼저 '달인'의 수제자 역할을 제안했다. 그는 지금도 방송 출연 제안이 오면 '정글의 법칙' 스태프들과 함께 하겠다는 옵션을 건다.

그렇게 주변을 챙기며 살아가는 김병만은 집에서도 가장이다. "제가 1남3녀 중 둘째인데 가장입니다. 조카들 학비도 대고, 월세방에 살았는데 넓은 집에 갈 수 있게 조금씩 보태서 해주기도 했어요. 한번은 엄마한테 화도 냈어요.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요. 인간이 항상 웃고만 살 순 없잖아요. 누가 찌르면 저도 아픈데 마냥 웃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방송을 하면서 늘 힘든 길을 택했던 김병만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저는 제작진 마인드로 방송을 하는 편이에요. 제가 재밌어서 해야 하고요. 그런데 재밌는 게 다 위험한 것들입니다. 하하. 제가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낀 거 같아요. 희극인이라는 꿈을 갖고 연극을 1996년 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사실 전 장난기는 많은데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웃지 않으면 '너 왜 인상 쓰고 다녀' 이런 오해를 받죠. 그냥 생각을 하고 있는 것뿐인데 말이에요. 저는 지금도 잠을 못 자요. 시간을 쪼개서 자는 편입니다. 아이디어 수첩이 있는데 자다 일어나서도 메모를 해요."

김병만은 다작을 하지 않더라도 1년에 한편 재밌는 걸 제대로 준비해서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코미디'도 하고 있다. 지방을 찾아 공연을 열고 있는데 해보니까 반응이 너무 좋아 뿌듯함을 느꼈다. 주민들은 김병만이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웃었다.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며 그 역시 행복감을 느낀다. 돈보다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게 그의 작은 욕심이다.

"지난번에는 공연 끝나고 280명과 사진을 찍었어요. 사실은 저도 에너지를 받고 오는 거예요. 우리는 웃음을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관객들이 웃으면 신나죠. 지자체의 도움을 받으면 주민들도 공연을 몇천 원 정도의 싼 가격으로 볼 수 있어서 좋고요."

하지만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도 있다. 특히 그는 가짜뉴스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는 악의적으로 편집된 영상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유명세의 대가라기엔 지나치게 가혹한 내용들도 많았다. 결국 변호사와 함께 고소를 진행 중이다.

"사람을 완전히 흉악범을 만들더라고요. 변호사를 통해서 모든 걸 찾아내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연예인들이 (가짜뉴스 때문에) 방송을 기피하게 됐어요. 본업인데도요. 물론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해요. 기수 문화가 좀 세다 보니까 오해를 받은 부분도 있죠. 제가 2000년에 '개그콘서트'로 데뷔했는데 2002년에 공채 개그맨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애매한 위치에 있었어요."

어렵게 자란 김병만은 늘 절실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독하게 일에 매진했다. 지각도 하지 않았고, 후배들에게도 엄격한 부분이 있었다. "먼 발치서 저를 본 사람들은 '독한 놈'이라 했을 거예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했을 거고요. 저는 백도 없고 오로지 몸 하나로 시작했으니까요. 어떤 후배는 방송에서 제가 하지도 않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직접 전화를 했더니 웃자고 한 소리래요. 더 따지려고 했는데 그 뒤론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좋은 일은 소문이 안 나고 안 좋은 일이 소문나는 세상이잖아요."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코너를 만드는 사람을 코너장이라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안 늦고 일찍 오죠. 소품도 밤새도록 만들어요. 그렇게 연습하고 긴장 속에서 하는데 상습적으로 늦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걸 선배들이 뭐라고 안 할까요? 어느 날 괴로운 일이 있어 옥상에서 통화를 하고 왔는데 문을 열다가 마포걸레를 얼굴에 뒤집어 썼죠. 후배들끼리 장난치려고 한 건데, 저는 당시 빚을 못 갚아 심각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화가 안 날 선배가 있을까요."

김병만은 지난해 모친상을 당했을 때 동료와 후배들이 많이 찾아줘 감사하다고 했다. "그냥 전화번호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문자를 보내 꽃만 보내달라고 했어요. 계좌도 안 적었죠. 그런데 '네가 그러니까 후배들이 장례식장에도 안 가지'라는 글을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온 후배들에게 '잘 되라고 가르쳐준 부분인데 내가 혹시 잘못한 게 있으면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어요. (김)준현이가 '형 너무 외로워보인다' 하더라고요. 눈이 외롭다고요. 저는 진지하면서도 대하기 쉬운 사람인데, 한번은 신인들이 공채 시험을 보러 와서 너무 인사를 세게 하는 거에요. 주변에서 김병만이 진짜 무섭다고 했대요."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을 둘러싼 소문들에 대해 일일이 해명했다. 특히 '물도 못 먹게 했다'는 소문에는 극도의 답답함을 표하며 "그거는 나도 가만 안 있는다.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너무 서운하더라. 나이를 먹을수록 연륜이 차서 떳떳해야 하는데 주눅이 드는 거다. 이제는 상처가 된다. 내가 그 정도로 악랄한 존재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털어놨다.

김병만이 가장 속상한 부분은 자신을 폭력적인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제가 그런 사람이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작은 산이라도 꼭대기를 올라본 사람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정글에서 원주민을 대해보면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숨기지 못하니까 오해를 많이 받고 책임감도 크고 하다 보니 멀리서 보면 단순히 화내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거죠. 정말 이 세계는 고지에 올라갈수록 좁아지더라고요. 자기가 먹을 풀이 적으니까 밀어서 떨어트려야 하는 세상인 거죠."

그는 '서로 다른 길을 가면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다'는 고 이어령 교수의 말을 좋아한다. "누군가 왜 어려운 걸 하냐고 물으면 '이쪽은 자리가 비어있잖아'라고 해요. 위험하지만 제가 독점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제가 키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제 캐릭터는 '도전의 아이콘'뿐인 거죠. 저는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은 제가 안 보이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네거티브한 생각을 하죠. 사실 저는 그 사이에 배우고 단련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그냥 여행'은 없어요. 머리를 비우면서도 아이템을 가져와야 하죠. 저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유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