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가 불탄다...폭염이 일으킨 산불, 9개국으로 번졌다

입력
2023.07.27 20:40
알제리, '최소 34명 사망' 최다 피해
인간 초래한 폭염이 일으킨 역대급 산불
"고온 건조한 환경이 불길 키워"

지중해가 불타고 있다. '기록적 폭염'이 부채질한 산불 탓이다. 이달 중순 그리스에서 시작된 산불은 남유럽을 타고 북아프리카까지, 지중해 연안국을 휩쓸고 있다.

지중해 연안국 덮친 화마

2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날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지중해 연안의 최소 9개국에서 산불이 타오르면서 40명 이상이 숨졌다.

15개 주(州)에서 동시다발적 산불이 난 알제리에서는 소방관 8,000명이 화마와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최소 34명이 사망했다고 알제리 관영 APS통신은 전했다. 1,500여 명은 집을 잃었다.

알제리 일부 지역 기온은 섭씨 50도를 찍었다. 폭염, 강풍, 고온건조한 기후로 바싹 마른 초목 등 악재가 겹치며 불길을 더욱 키우고 있다. 한 주민은 "버너로 불붙이듯 거세게 치솟은 불길에 집과 해안가 리조트가 불타고 광활한 산림이 순식간에 검은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고 전했다.

이웃 국가 튀니지에서도 북서부 해안 마을 멜룰라에서 300명이 대피했다. 멜룰라의 한 식당 주인은 "목조 건물이 전소된 지 몇 시간이 지난 후에도 불길을 잡을 수 없었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지난주 전례 없는 폭염이 야기한 가뭄으로 불을 끌 물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기후재앙의 축소판이 됐다. 북부 지역에서는 테니스공만 한 우박이 떨어지고 폭풍우로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동안 남부 지역은 바싹 말라붙었다.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남부 시칠리아섬에서만 약 1,400건의 화재가 났다. 24일 시칠리아섬 동부 카타니아에서 47.6도까지 치솟은 이상고온 탓이다. 이는 2021년 세워진 유럽 최고 기온 기록 48.8도를 육박한다. 잔혹한 산불과 폭우로 16세 소녀와 98세 노인 등 최소 7명이 숨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 17일부터 산불이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는 로도스섬 남부에서 주민과 관광객 2만여 명이 대피했다. 25일 현재 약 5,000명의 관광객이 긴급항공편으로 섬을 떠났다. 아테네 동쪽 에비아섬의 한 마을에서는 불을 끄던 소방헬기가 계곡으로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숨졌다.

국토의 90%가 가뭄으로 말라붙은 포르투갈과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에서는 강풍으로 소방헬기가 뜨지 못해 화재 진압에 큰 차질을 빚었다. 스페인 그란카나리아섬에서도 주민 수백 명이 대피하고, 도로 3곳이 폐쇄됐다. 튀르키예도 사흘째 화마와 싸우고 있다.


기후변화가 산불에 미치는 영향은

기습적 산불에 각국은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기후변화의 핫스팟인 지중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방어 수단은 없다"며 "더운 기온과 더한 가뭄, 더 강한 바람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로도스섬에서 산불과 싸우는 적십자사 자원봉사자 마리아 페구우는 "현재 상황을 묘사하기조차 어렵다"며 "섬의 절반이 불길에 휩싸여 통제할 수 없어 보인다"고 미국 CNN방송에 말했다.

산불을 초래한 건 인간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화석연료를 계속 태워 지구를 덥히는 한 지중해에서 발생한 파괴적 이상기후는 더 빈번하고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연구단체 세계기상원인분석(WWA)은 지난 25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가 없었다면 '지중해 산불'을 일으킨 폭염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재난은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이다. 코페르니쿠스 대기 모니터링 서비스(CAMS)에 따르면, 이번 산불(1~25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약 1메가톤으로 지난 20년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고 CNN은 전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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