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살해' 혐의 받는 아내... 대법원 "유죄 확신 못해"

입력
2023.07.27 14:37
30대 여성 1·2심에선 징역 30년
대법 "간접증거 불과" 파기환송

니코틴 원액이 섞인 물을 마시게 해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30대 여성 사건에서, 대법원이 "유죄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여성은 다시 고등법원 재판을 받게 됐다.

27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여성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의 남편 B씨는 2021년 5월 27일 새벽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전날 아내는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미숫가루를, 퇴근 후엔 흰 죽을 먹도록 했는데, 같은 날 밤 남편은 극심한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이송됐다. 치료를 받고 이튿날 귀가한 남편은 아내가 건넨 냉수를 마신 뒤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고 당시 A씨에게선 니코틴 제품(액상 담배)이 발견됐다.

검찰은 A씨가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했다고 봤다. 응급실에서 돌아온 뒤 남편이 니코틴을 흡수할 수 있었던 기회는 아내가 건넨 찬물 한 컵을 마실 때뿐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또 A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2018년부터 교제하던 내연남이 있었던 점도 범행 동기로 지적됐다. 수사 결과 A씨는 남편이 숨진 후 내연남과 함께 살 주택 보증금 마련을 대출을 받았던 것으로도 드러났다.

1심은 미숫가루, 죽, 물 등 아내가 준 모든 음식물이 살해를 목적으로 두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이어 2심은 "응급실에서 채취한 혈액이 적기에 확보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숫가루와 죽에 대해선 무죄로 봤다. 다만, 귀가 후 마시게 한 찬 물에 니코틴 원액이 있었을 것이란 점을 받아들여 1심과 같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검찰이 제시한 정황은 모두 간접증거에 불과해 A씨의 범행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아내가 준 물에 니코틴이 있었다고 가정할 때) 체내 니코틴 농도가 최고점에 이르는 시각에 B씨가 휴대폰을 이용한 기록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내로부터 압수한 니코틴 제품의 함량과 B씨의 음용 추정량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A씨의 사전 범행 준비·계획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유죄 확신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고, 추가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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