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동 연동골목시장. 평일 낮이지만 시장은 꽤 북적거렸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장을 보던 한 부부는 “시장 옆 고분에서 산책을 한 뒤 시장에 들렀다”고 했다. 연동골목시장에 있는 동문, 서문, 북문 중 동문에서 30m만 걸어가면 역사 유적지인 ‘연산동 고분군’이 있다. 서문에서도 50m 거리니 사실상 시장과 고분이 바로 붙어 있는 셈이다. 연동골목시장은 이 지리학적 이점을 놓치지 않았다. 역사와 문화를 엮은 ‘힐링 투어’ 형태로 사람들이 시장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1층은 상가, 2층은 아파트로 구성된 연동골목시장은 1978년 문을 열었다. 점포는 80여개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떡, 건어물, 채소, 과일, 생선 등 농축수산물을 공급하는 지역 밀착형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곳도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새벽 배송이나 온라인 쇼핑, 인구 감소와 맞물려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지난해 역사 유적지를 시장에 접목해 고객 방문을 유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장 바로 옆 ‘연산동 고분군’을 시장체험 투어 프로그램으로 개발한 것이다. 연산동 고분군은 삼국시대 5세기 후반에서 7세기에 만든 무덤군으로 국가지정문화재다. 완만한 구릉 능선을 따라 18기의 봉분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경사지에는 1,0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영남지역 삼국 시대 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가 확인된 곳이다.
이 고분군을 탐방한 뒤 시장 골목에서 펼쳐지는 각종 문화예술공연을 관람하고, 장보기 등 시장 체험을 하도록 꾸몄다. 시장 체험을 위해 1만 원 온누리 상품권도 지원한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 사이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에 열린 이 프로그램에는 가족, 어린이, 학생 등 600명 이상이 참가했다. 박동호 연동골목시장 문화관광형 육성사업단장은 “비가 오는 날씨 때문에 취소된 날도 있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올 5월부터 지난달 사이에만 250여 명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올해부터 평일 야간에 ‘연산골목시장&연산동 고분 별빛야행 힐링투어’도 새로 선보였다. 매월 둘째, 넷째주 수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사이에 문화공연과 시장 체험을 즐기고 고분군을 둘러보는 순서로 진행된다. 지난 26일 처음 시작한 이 투어는 열흘 전 예약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시장 관계자는 “시장 캐릭터도 삼국시대 고분군 옆 시장이라는 점과 어울리도록 왕과 왕비, 안전장군, 맛 장금이 등으로 이름 붙여 상표 출원을 마쳤다”고 말했다.
고객 편의를 높기기 위한 세심함도 눈길을 끈다. 시장 서문 왼쪽엔 ‘포인트 적립’ 키오스크가 놓여 있다. 1만 원 이상 구매하면 키오스크에서 포인트 적립이 가능하다. 박 단장은 “편리한 포인트 적립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시장 이용 단골 고객도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포인트 적립을 시작한 지난해 9월부터 연말까지 754명이 포인트 회원으로 가입했고, 지금은 900명까지 늘었다. 시장 측은 조만간 동문 쪽에도 포인트 적립 키오스크를 한 대 더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연동골목시장은 부산에서 유일하게 카카오와 함께 ‘우리동네 단골시장’ 사업을 진행한다. ‘우리동네 단골시장’은 전통시장 상인들이 카카오톡 채널을 이용해 단골손님을 만들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장 측은 이 프로그램을 기존에 만들어 놓은 시장 애플리케이션(앱)에 연결해 바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기존 시장 앱에는 시장 내 점포와 품목, 가격 등의 정보는 제공했지만 결제 기능이 없었다.
단순히 물품을 구매하는 곳 그 이상의 즐거움을 고객에게 주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추석 명절을 맞아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했고, 지난달 17일엔 다문화가족 초청 세계 요리 대회를 진행했다. 10월엔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이 참가하는 가족 요리 대회를 열 계획이다. 40년 가까이 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재천 연동골목시장 상인회장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고객은 물론 외국인도 전통시장을 친숙하고 즐거운 곳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주 시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시장에 오는 것이 익숙해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단골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시장 자체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상인 매출이 이전보다 30% 이상 늘었고, 고객 만족도도 80%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강 회장은 “정부의 전통시장 시설현대화 사업 혜택을 받아 시설 면에서 어느 시장보다 훌륭하다”면서 “이 같은 외형에 고객이 시장을 찾아 올 수 있는 내용물을 채워 나간 덕분에 활기 넘치는 시장이 되고 있다”고 흐뭇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