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과 의사부족 문제

입력
2023.07.27 20:00
25면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대학 행정실을 통해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한 고등학생 환자에 대한 민원이 접수됐다. 발신인은 부모가 아닌 학생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고,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했으니 그 담당의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피부발진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환자가 조직검사에서 희귀한 종류의 악성림프종으로 확진됐을 때는 안타깝게도 4기였다.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시도했지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 결국 더 이상 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시도할 수 없는 말기 상태가 됐다.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연명 의료는 환자에게 고통만 더할 뿐이라는 점을 설명하자 아버지는 연명 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했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전하러 갔던 학교에서 부모가 어떤 설움과 하소연을 토해 냈을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거나 사망했을 때, 그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심리는 환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모 같은 마음으로 감정을 이입하여 환자의 투병과 임종을 함께했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민원에 대한 답변서를 써야 하는 것은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 교수는 어느 날 살인 혐의로 조사받으러 오라는 경찰의 통보를 받았다. 깜짝 놀라 내용을 알아보니, 간암 진단을 받고 7년 동안 수술과 항암제 치료를 반복하다 사망한 일흔두 살 할머니가 연명 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환자의 아들이 의료진과 주 간병인이었던 누나를 각각 살인죄 및 친족 살인죄로 고소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말기 상태에 이르자 저산소증으로 기관 내 삽관을 했었다. 담당 의사가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적용하면 생명 연장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투병 기간 어머니를 간병하던 딸은 어머니께서 평소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중환자실로 옮기는 데 반대했고 어머니를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다. 가족 대표와 의료진이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논의한 끝에 마스크를 통한 산소와 수액은 계속 공급하기로 하고 삽관을 제거했다.

환자가 사망한 지 한 달 후 평소 간병은 물론, 문병조차 한 번 오지 않았던 아들이 '치료를 포기하고 기관 내 삽관을 제거한 것은 살인'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결국 재산 상속이 고소의 목적임이 밝혀지면서 의료진과 환자의 딸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하지만 1년 넘게 경찰서와 검찰청을 들락거리며 조사를 받으면서 피폐해진 동료 교수의 마음은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

생사가 오가는 중환자를 살피는 전문과일수록 이런 민원과 분쟁이 더 많이 발생한다. 2017년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으로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구속됐을 때, 소아청소년과 지원 미달사태는 이미 예견됐다. 5년이 지난 후 최종적으로 무죄로 판결되었지만 자신도 비슷한 사건으로 구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사들은 알기 때문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간호사 이직률은 타 직종에 비해 3배에 달한다. 중환자가 많아 간호사의 전문성이 더 필요한 과일수록 의료 분쟁의 위험이 커지고, 그로 인해 다시 이직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보수에도 보람을 느껴서 지원했던 의료진들도 늘어나는 의료 현장의 분쟁은 견디기 힘들다. 의료진의 잘못이 아니어도, 아프고 지친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이 없을 수 없고, 의료진은 그 화풀이 대상이 되기 쉽다.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를 하느냐?"라고 환자단체 대표가 공공연히 말하는 세상에서 누가 안전하고 수입이 더 높은 다른 선택지를 버리고 자신을 기꺼이 위험에 빠뜨리려 할까?

의료분쟁조정법이 있으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다 보니, 생명과 직접 연관된 지원기피과일수록 의사가 부족하다. 소아청소년과 같은 필수진료과 의사를 확보할 목적으로 의대 신설이나 모집정원 확대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