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활동(교권) 침해를 당한 교사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학내 기구인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교사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교보위 심의의 사각지대에 있어 속수무책이라는 교직사회 불만이 크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해 접수·처리한 교권 침해 상담 사례 가운데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241건으로 가장 많았다. 2020년 124건, 2021년 148건에 비해 급증한 것으로, 학생에 의한 피해(64건)의 4배에 달했다.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문제 해결 압박, 아동학대 신고 위협을 주된 피해 사례로 꼽았다.
이처럼 학부모의 교권 침해 호소가 높지만 막상 교사들은 교보위를 통한 대응을 주저한다. 학부모 간섭을 '악성 민원'으로 판단해 줄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제자 가족을 상대로 교보위에 선뜻 문제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피해 경험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교원지위법상 교육활동 침해 유형 가운데 '정당한 교육활동에 반복적인 부당 간섭행위'를 이런 학부모 행태에 적용해볼 수 있지만, 관련 법규에 그 이상의 세부 사항이 열거돼 있지 않아 고심 끝에 교보위 개최 신청을 포기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현직 교사는 "(교보위 개최 결정권이 있는) 학교장이 '그 정도 사안은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하면 근거를 대며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봄이 경기교사노조 교원보호국장은 "악성 민원 기준과 그것이 교보위가 다룰 교육활동 침해에 해당하는지 세부 대응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선 섣불리 교보위를 찾았다간 악의적 아동학대 신고로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실제 최근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부산 북구 초등학교 교사는 본보에 "아이를 제지하던 중에 일어난 신체적 접촉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까 두려워 교보위를 열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원지위법상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교사의 정당한 공무 방해'와 '무고'를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교보위에 교권 침해 학부모를 제재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에게는 교내 봉사, 출석정지, 전학 등을 처분할 수 있지만 학부모에 대해선 '사과 권고'가 유일하다. 학생 관련 처분의 일종으로 학부모(보호자)에게 부과된 심리치료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학부모가 교권 침해 당사자라면 학교 구성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강제 제재를 전혀 할 수 없다.
한 현직 교사는 "교육활동을 현저히 침해한 부모에게는 학교 운영 참여 제한 등 불이익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총은 형사사건 수준의 학부모 문제는 교사가 원하면 교육청이 학부모를 고발해 악성 민원에 경각심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석 교총 교권본부장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대한 실태조사도 전혀 없는 게 현실"이라며 "교육당국이 주기적 실태조사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장이 학부모 눈치를 보느라 교보위 개최를 꺼리는 경향도 교권 보호에 걸림돌이란 지적도 나온다. 교원지위법은 교장이 교권 침해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피해 교사 보호 조치를 하게 돼 있지만 불이행 시 징계 규정이 없다. 피해 교사가 요청하면 교보위를 열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교보위 심의 기준 교권 침해는 연 2,500여 건이지만 교보위에 가지 않은 채 속앓이하는 교사가 훨씬 많다는 게 교원단체들의 설명이다. 교육부도 "피해 교사 98%는 교보위 심의까지 가지도 않는다"고 인정할 정도다.
교권 침해 학생에게 내리는 교보위 처분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분을 이행하지 않아도 추가 제재 규정이 없다. 무차별 폭행 등 심각한 교권 침해 행위를 한 학생이 전학 처분을 받아도 지속적 심리·상담치료, 재발방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다른 교사에게 '폭탄을 돌리는' 꼴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