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은 끝내 밝혀진다

입력
2023.07.2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것이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마주하길 바라는 사람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끝내 외면하려는 사람. 전 세계적 화두인 기후변화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명징하다. 지난주만 놓고 보더라도 북미와 유럽에는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졌고, 이란에서는 65도라는 상상조차 어려운 기온이 나타났다. 현세를 아예 ‘인류세’라고 부르자는 지질학계의 논의도 한창이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국제부에서 매일 각국의 기후 위기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도 이를 외면하려는 후자의 태도에 가까웠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이상 고온과 가뭄, 산불, 폭우, 홍수, 산사태 등 각양각색의 재난을 들여다보면서 ‘한국은 아직 이 정도까진 아니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최근 영국 BBC방송 홈페이지의 기후 위기 관련 보도 사이로 익숙한 글자가 등장하자마자 자취를 감춰버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15일 내린 폭우로 침수됐던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14명의 사망자를 낸 이 참사를 두고 BBC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극단적인 재해가 드물었던 한반도에도 마침내 지구 온난화의 여파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지하차도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74년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BBC에 전했다. 비극적인 건, 처음은 결코 끝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나기 마련이다.

어떤 진실이 불편한 까닭은 한번 알아차리고 나면 더 이상 이전과는 같은 삶을 살 수 없어서다. 기후 위기라는 진실 역시 ‘오늘보다 더 나쁜 내일’을 예고하기에 기꺼워하기 어렵다. 일상의 순간마다 죄악감도 스며든다. 일회용 플라스틱 잔에 든 아이스 커피와 육식뿐 아니라 심지어는 샤워와 세탁이라는 사회적 인간으로서는 필수 불가결한 행위까지. 나란 인간이 숨 쉬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구에는 곧 해악이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라니.

그렇다고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인간의 생활 습관이 그만큼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건 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기후를 다룬 ‘우리가 날씨다’라는 책에서 “개인행동의 헛수고는 바로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개인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 모든 변화는 ‘파도타기’였다는 것. 파도타기처럼 누군가로부터 번져 나가 동시에 함께해 낸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깜박거리는 기후 위기의 경고등은 ‘이제 다 틀렸다’는 절망과는 거리가 멀다. 인류세를 연구하는 인류세워킹그룹(AWG)의 콜린 워터스 위원장 역시 “1950년대에 시작된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에 일으킨 매우 급격한 변화를 나타낸다”면서 “인류의 영향은 나쁜 방향 혹은 좋은 방향으로도 급속도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지구를 망가뜨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행동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구원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의 생활 습관과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여기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