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끝내 '집속탄 전면전'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에서 지원받은 집속탄을 전장에 투입하자마자 러시아가 맞불 작전에 나선 것이다. 하나의 폭탄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개의 폭탄이 상공에서 흩뿌려지는 집속탄은 피해 범위가 넓고, 불발탄의 추가 피해 우려도 큰 탓에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낳는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실제 비극은 이미 시작됐다. 양측 모두에서 민간인 사망·부상이 속출했다.
집속탄 피해를 먼저 주장한 쪽은 러시아다. 22일(현지시간) 러시아 국방부와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쯤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피아티카트키에서 러시아 종군 기자 4명이 집속탄 포격을 받았다. 이 중 리아노보스티통신 소속 로스티슬라프 주라블레프는 병원 후송 중 사망했다고 러시아 측은 밝혔다.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벨고로트도 같은 날 집속탄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곧이어 우크라이나 쪽에서도 집속탄 부상자가 보고됐다. 이날 오후 12시 10분 돈바스 지역 드루즈키우카에서 우크라이나군 훈련장을 취재하던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소속 촬영 기자가 집속탄 파편에 맞아 다쳤다고 DW는 성명을 통해 밝혔다.
양국 모두 '민간인 피해'를 유독 강조했다. 러시아는 기자들이 군용 차량이 아닌 민간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집속탄에 맞았다면서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빅토르 본다레프 러시아 국방안보연방위원장)이라고 비난했다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드루즈키우카 당국도 "러시아 집속탄이 주거용 건물을 강타해 주민 2명이 다쳤다"고 맞받았다.
문제는 집속탄이 계속 사용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집속탄에 따른 비극이 얼마나 커질지 예측조차 힘들어졌다. 우선 침공 피해국인 우크라이나가 집속탄을 계속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전쟁 장기화로 탄약 공급에 차질이 생긴 데다, 러시아가 전선에 두텁게 깔아 놓은 지뢰 탓에 대반격 작전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가 집속탄을 쓰면 우리도 쓸 것"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그는 "러시아엔 여러 종류의 집속탄이 충분히 비축돼 있다"고도 강조했다. 전쟁 초부터 러시아는 이미 집속탄을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를 향해 공격 수위를 부쩍 끌어올리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22일 크라스노그바데이스키 지역 탄약고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아 폭발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반경 5㎞ 이내 주민들이 대피하고 열차 이용이 중단됐다. 지난 17일 크림대교, 19일 탄약고, 20일 행정 건물 등에 대한 공격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 미국 애스펀 안보 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여해 "크림대교가 무기 이동에 활용되고 있다. 군사 시설은 무력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연이어 공습을 가하고 있다. 오데사는 러시아가 17일 흑해 항구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흑해 곡물협정'을 종료한 뒤, 거의 매일 공격을 받고 있다. 곡물 관련 시설은 물론, 민간 거주 건물이나 종교 시설도 파괴됐다. 23일 새벽엔 미사일 공격으로 민간인 1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쳤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