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어선들이 오징어를 찾아 러시아로 떠난다. 최근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이 예년보다 무려 80% 가까이 줄자, 수천만 원의 출어 비용을 들여서라도 원정 조업을 선택한 것이다.
강원도 환동해본부는 23일 “강릉 주문진과 속초, 경북 포항 선적 채낚기 어선 33척이 24일부터 러시아 연해주 수역에서 오징어 조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우리 정부와 러시아가 맺은 협정에 따라 어선 1척당 러시아 연방수산청에 1,400만 원의 입어료를 내면 10월까지 원정 조업이 가능하다는 게 환동해본부 설명이다. 강원도는 원정 조업에 나서는 도내 어선에 1척당 2,500만 원의 경비를 지원한다.
이번에 국내 채낚기 어선에 배정된 어획량은 1척당 오징어 91t과 복어 1.8t이다. 어선 대부분이 할당된 어획량을 모두 채울 때까지 장기간 조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원정에 나서는 선주와 어민들의 심정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모(73)씨는 “최근 들어 주문진 앞바다를 비롯한 연안에서 오징어가 자취를 감춰 사정이 말이 아니다”라며 “러시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그동안 잡지 못한 어획량을 만회해야 한다”고 속사정을 전했다.
환동해본부 집계 결과, 올 들어 강릉과 속초, 고성 등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784t으로 지난해(1, 279t) 같은 기간의 60% 수준에 그쳤다. 앞서 2021년 어획량(2,852t)에 비해서는 무려 73% 감소했다. 연간 2만t을 넘겼던 2000년대 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획량 감소가 심각하다. 어민들 사이에선 “씨가 말랐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때 동해안을 먹여 살리다 사라진 명태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오징어 잡이를 통한 동해안 어민들의 수입 역시 2년 전에 비해 64% 줄었다. 치솟는 기름과 인건비 부담을 감안하면 배를 띄울수록 적자가 쌓이는 형편이다. 어민들이 수천만 원 넘는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 해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환동해본부 관계자는 “채낚기 어업인들의 경영 안정과 연근해 대체어장 확보 차원에서 러시아 수역 조업 어선에 대한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