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도 없이 병사 급류로 내몬 해병대

입력
2023.07.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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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섰던 해병대 1사단 소속 채수근 상병이 실종 14시간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자대 배치 두 달밖에 안 된 사병을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은 채 구조작업에 투입한 군의 안전불감증이 소중한 젊은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사고 당시 채 상병 소속 부대원 39명은 9명씩 ‘인간 띠’를 만들어 수중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구명조끼나 로프 등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비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수색작업 중 갑자기 강바닥이 내려앉아 일부 대원들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자대 배치 100일도 안 된 채 상병이 희생됐다.

사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군의 대응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사고가 난 내성천은 바닥이 모래라 3m씩 갑자기 빠질 수 있는 지형인 데다, 이번 집중호우로 물살도 빨라져 애초부터 안전장비 없는 수중 수색은 무리였다는 게 주민들 증언이다. 현장 지휘관이 사고 직전 내성천의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았거나, 파악하고도 이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27년간 소방관으로 재직 중인 채 상병 부친은 그제 사고 현장을 찾아 “구명조끼를 왜 안 입혔느냐. 기본도 안 지킨 것 아니냐”고 오열했지만, 군 관계자들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하루 늦게 최용선 해병대 공보과장은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다”고 현장 지휘관들의 판단 잘못을 인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채 상병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군 내부 전반의 안전불감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군 통수권자의 얘기도 한낱 공수표에 그칠 뿐이다. 군 복무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나 부모들 역시 이번 사고 소식에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군은 이번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 책임 소재를 가린 뒤,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