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로 경북 예천군 하천에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병사들을 투입한 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군인 부모들은 재난시 병사들의 대민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민원을 국방부에 제기하고 있다.
20일 오전 해병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동네 마트에도 있는 만 원짜리 구명조끼도 군인은 입을 수 없나, 도대체 국방비는 어디에 쓰는 건가" "당신 아들이었다면 구명조끼도 없이 그 물살에 내몰았겠나"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밧줄 하나에 매달려 두려움에 떨었을 어린 장병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미어진다"는 내용의 비판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사고 발생 하루 전 장갑차도 빠른 유속 때문에 5분 만에 수색을 포기하고 철수했던 곳이었던 만큼 군 지휘부가 사고 위험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장구를 갖춘 채 군인들을 투입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이 '내부규정상 고무보트를 타고 수색할 땐 구명조끼를 입지만, 하천변 수색 시엔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다'고 해명하자 비판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해병대 포병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심모(23)씨는 "구명조끼 만 원짜리 하나 주는 것도 매뉴얼이 있나, 귀신 잡는 해병대면 귀신 만들지 말고 귀신도 잡을 수 있게 상관들이 똑바로 정신 차려서 대원들 안전부터 챙겨달라"고 비판했다. 해병대 1,172기라고 밝힌 한 작성자는 "얼마나 지능이 떨어져야 대민지원 중 사망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나, 해병대 제대 후 처음으로 해병대가 부끄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군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군인 아들 부모님 카페(군화모)'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병사들의 대민지원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집단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국방부에 대민지원 중단 촉구 민원을 넣었다는 한 작성자는 "아들을 둔 엄마의 이기적인 의견이 아니라, 만만하면 군인을 앞세우고 보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이 글엔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 아들들, 그 아들들의 아들들도 같은 일에 또다시 희생될 것" "이러니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자녀를 군대 안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 아닌가, 아이를 군에 보내고 몇 번을 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경북도소방본부와 해병대 등에 따르면,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20)일병은 19일 오전 9시 10분쯤 내성천에서 실종 주민 수색 임무를 수행하다가 실종됐다. 사고 당시 A일병을 포함한 해병대원 6명은 하천에 들어가 손을 잡고 일렬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실종자를 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하천 지반이 무너지며 A일병이 급류에 휩쓸렸다.
A일병은 이날 오후 11시 8분쯤 예천군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실종 지점인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하류 쪽으로 6㎞가량 떨어진 곳으로 발견 당시 A일병은 심정지 상태였으며 인근 병원에 이송돼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현장에 달려온 부모는 오열했다. A일병은 전북도 소방본부에서 27년 일한 베테랑 소방대원의 외아들이었다. A일병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이렇게 물살이 센데 구명조끼 얼마나 한다고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A일병 어머니는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는데. 어딨어요. 내 아들"이라며 주저앉았다.
A일병의 아버지는 아들과 사고 하루 전인 18일 2분간의 짧은 전화 통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내가 걱정돼서 저녁에 전화했는데 어제. 2분 딱 통화를 했어.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살겠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해병대는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해병대 안전단은 호우피해 복구작전에 투입된 부대의 안전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보완 중에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