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잘해줘야 회사 안 떠날까... 기업 속 '사람'을 연구하는 CPSO

입력
2023.07.20 13:30

편집자주

지난해 12월부터 스타트업의 다양한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을 깊이 분석해온 'C레벨 탐구'가 이번 16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⑯김안나 레몬베이스 CPSO

최근 몇 년간 노동시장에는 신조어가 쏟아졌다. 대(大)이직의 시대, 대퇴사의 시대, 조용한 사직 등이다. 요약하자면 젊은 노동자들이 업무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성과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미련 없이 조직을 떠나는 현상을 말한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단순히 수요에 따라 인력을 채용 또는 해고하는 입장이었던 기업들도 달라질 필요가 생겼다. 떠날 사람들을 붙들거나, 떠나지 못하게 미리미리 잘해주는 것. 기업들의 새로운 고민거리다.

2020년 설립된 레몬베이스는 이런 기업들의 고민을 대신 해결해 줄 HR(인력)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사스) 스타트업이다. 레몬베이스는 "이제 기업이 사람을 선택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사람이 기업을 선택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업들의 '인사 관리' 시스템이 '구성원 경험 관리'로 전환돼야 한다고 본다. △대규모 공개 채용 △일방적 평가 △직급·근속에 따른 보상 등 납작했던 인사 관리 시스템을 △지속적인 성과 관리 △성과와 역량에 비례하는 차별적 보상 △업무에 따른 성장 △몰입도 증진 등으로 풍성하게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레몬베이스 안에는 전문적·제도적으로 구성원의 경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식을 생산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피플사이언스' 그룹이 존재한다. 김안나 최고피플사이언스책임자(CPSO·Chief People Science Officer)를 만나, 레몬베이스와 피플사이언스 그룹이 하는 일을 자세히 탐구해봤다.

-최고피플사이언스책임자, 어떤 역할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고인사책임자(CHRO)의 '지식 파트너'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피플사이언스 그룹은 △일하는 사람들의 성장에 필요한 지식을 축적하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기업 구성원들이 성과를 내고 몰입하고 성장해가는 건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어요. 이를 지식과 데이터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전략을 세워서 고객에게 도움을 드리는 것이죠."

-그룹 내 데이터팀·프로페셔널 서비스팀·콘텐츠솔루션팀은 각각 어떤 기능을 하나요?

"데이터팀은 구성원과 관련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사점을 도출하는 구성원 분석(People analytics) 역할을 합니다. 또 프로페셔널 서비스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문가 서비스를 제공해요. 고객에게 조직 진단이나 데이터 분석 결과를 자문해주죠. 또 콘텐츠솔루션팀은 레몬베이스가 축적한 지식을 세상에 널리 전파합니다. 다시 말해 피플사이언스 그룹은 지식과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축적하고 활용한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이력의 소유자들이 일하고 있나요?

"배경이 정말 다양합니다. 통계학을 전공하고 게임회사에서 게임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게임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을 분석하고 싶어서 레몬베이스에 온 팀원도 있고요. 인지심리학을 연구하다가 조직 구성원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몰입하는지 분석하기 위해 프로페셔널팀에서 활동하는 팀원도 있습니다. HR 컨설팅 분야에서 일했던 직원도 있고요."

-CPSO 직책은 사실상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레몬베이스가 유일한 듯합니다. 혹시 롤모델로 삼은 국내외 기업 사례가 있었습니까?

"구글의 피플애널리틱스팀, 아마존 피플사이언스팀 등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구글은 2008년 '산소 프로젝트'(Project Oxygen)라는 이름으로 성과가 좋은 관리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들을 분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2012년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Project Aristotle)를 통해 높은 성과를 내는 팀의 특징을 연구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모두 리더들이 처한 문제를 돕는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죠. 레몬베이스도 이런 선례처럼 리더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 사람에 대한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예컨대 어떻게 리더들에게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나요?

"리더와 구성원의 1대1 미팅을 두고 고민을 많이 합니다. 부담스럽고 두렵기만 한 1대1 미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할 수 있는지 저희가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1대1 미팅을 하기 전에 구성원으로 하여금 의제를 먼저 제안하게 하고, 리더와 구성원이 게시판에서 이 의제를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기록이 쌓이다 보면 1대1 미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세우거나 성과를 되돌아볼 때도 참고하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에 인사팀과 유사한 '피플' 관련 팀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스타트업들은 유독 구성원에 관심이 많을까요? 또 레몬베이스의 피플사이언스 그룹은 이런 팀들과 어떤 차별점을 갖고 있나요?

"인사팀과 피플팀의 역할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성원을 뽑는 채용, 채용된 구성원의 몰입을 관리하는 일, 성과를 측정·평가하고 보상을 하는 일 등은 유사하죠. 다만 구성원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나 테크기업에서 '피플팀' 또는 '피플앤컬처팀' 명칭을 사용하는 일이 많은데요. 이는 기업과 구성원의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기업이 개인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개인이 회사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기업과 개인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죠. 기업에게 채용된 구성원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중요한 이슈가 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관리하지 않으면 퇴사로 이어지니까요. 특히 엔지니어 등 기술인재 확보가 중요한 테크기업들은 거의 '인재 전쟁'을 치릅니다.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고, 몰입하게 하고,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을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조직이 바로 피플팀이죠. 아예 '구성원경험팀'(Employ Experience·EX)이라고 명명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각 기업, 직군마다 고유한 인사 관리 방법이 있을 텐데요. 레몬베이스는 어떻게 여러 기업과 직군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범용' 서비스를 고안하는 것인가요?

"사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게끔 개별화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진 않습니다. 저희가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우선 성과·몰입·성장 등의 주제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뾰족하게' 정의한 후 이를 정보기술 기반 서비스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리더가 1대1 미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최고경영자가 조직 전체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등으로 문제를 좁힌 후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죠."

-CPSO로서의 목표는 무엇인지 여쭙습니다.

"저희 비전은 기업의 구성원이 몰입과 성장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의 비전도 같습니다. 이를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성과를 만들고 몰입할 수 있는 조직, 구글의 피플애널리틱스팀과 아마존의 피플사이언스팀을 뛰어넘는 조직을 만들면 제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