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이 '수해 중 골프' 논란이 불거진 지 나흘 만인 19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민의힘에서 중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자 자세를 낮춘 것으로 보인다.
홍 시장은 이날 대구시청 기자실을 찾아 "주말 일정이고, 재난 대응 매뉴얼에 위배되는 일도 없었지만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90도 숙였다.
홍 시장은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난 15일 대구에서 측근들과 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구는 수해 피해가 없었다", "나는 전국을 책임진 대통령도 아니고 대구시만 책임지는 대구시장"이라며 떳떳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과 의향을 묻는 취재진에게는 "괜한 쓸데없는 트집"이라고 일축했다.
심지어 전날 당 지도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할 때까지도 "아직도 국민 정서법에 기대어 정치를 한다"고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랬던 홍 시장이 태도를 180도 바꾼 건 당 중앙윤리위원회의 중징계 가능성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홍 시장이 '당원권 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받는다면 향후 공직선거 출마 시 공천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홍 시장의 향후 정치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홍 시장은 '대구시 매뉴얼을 어긴 적 없다'고 주장하지만, 당원 징계 사유에는 해당할 수 있다. 국민의힘 윤리규칙에는 '자연재해나 대형 사건사고 등으로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거나 국민과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경우 등에는 경위를 막론하고 오락성 행사나 유흥·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당에선 홍문종 전 의원이 2006년 수해 중 골프를 쳤다가 최고 징계인 제명을 당한 전례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시장은 대처 과정에서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가중 징계마저 예상됐다"고 전했다. 특히 당에선 홍 시장의 골프 여부보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의 오만한 태도가 국민감정을 건드렸다는 점을 들어 문제 삼는 분위기다.
홍 시장 사과가 오는 20일 예정된 당 윤리위의 징계개시 여부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실제 당내에선 "사과로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와 함께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홍 시장 사과에 대해 "윤리위에서 판단하는 데 어느 정도 참작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문종 전 의원 제명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당은 과거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와중에 골프 등으로 물의를 빚으면 엄정 대응한 전력이 있어서 참조가 될 것"이라며 중징계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인간적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공감 능력"을 거론하며 "고위공직자의 기본자세와 매우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대표는 "윤리위는 독립돼 움직이는 기관이고 어떤 누구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면서 "윤리위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는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