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비도 300원 올랐는데 240원 인상이라니" 335만 최저임금 노동자들 '시름'

입력
2023.07.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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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240원 찔끔 인상에 노동 현장 실망감
고물가 속에 "투잡 뛰라는 얘기냐" 노동자 반발
"윤석열 정부 내내 최소폭 인상 계속될 것" 전망도

마트 축산 코너에서 일하는 김미정(53)씨는 19일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240원(2.5%) 올랐다는 소식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식비ㆍ대중교통비ㆍ전기료ㆍ대출금리 등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 최저임금이라도 올라 생계 부담을 덜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남편 역시 최저임금을 받고 있어 자녀를 포함한 가족 생활비와 고정비 지출을 빼면 예금ㆍ적금은 사치인 상황. 김씨는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정부가 우리 존재를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 같다”며 “대통령이 기업을 돕는다는 뉴스는 계속 나오는데 서민을 위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아쉬워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시급을 9,860원으로 결정하면서 노동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가 무섭게 오른 상황에서 최저임금은 찔끔 상승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도 올해 물가상승 전망치(3.5%)보다 낮은 최저임금 인상(2.5%)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급여가 최저임금과 연계된 노동자가 최대 335만 명으로 추정되는 현실에서, 이들 저임금 취약 노동자가 실질임금 감소를 겪을 거란 우려가 크다.

서울 지하철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하는 서재유(43)씨는 11년째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정규직 역무원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월급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는 “이곳에서는 20년 일한 사람이나 1년 일한 사람이나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며 “교통요금만 300원, 막걸리는 1,000원이 오른 상황에서 시급 240원 인상은 투잡을 뛰라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 2018년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을 때 잠깐 ‘이제 좀 살 만해지겠다’고 생각했다”며 “2019년부터는 최저임금 동결 상태여서 그때의 인상 효과도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결정에 참고하는 한국통계학회의 ‘비혼 단신노동자(혼자 사는 무주택 임금노동자) 실태 생계비’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근로자 생계비는 241만 원. 최저 생계비로 241만 원이 필요하다는 뜻이지만, 올해 최저임금(월 201만 원)이나 내년 최저임금(월 206만 원)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 원 이상 인상을 요구했던 배경이다.

생활고를 타계할 방법을 찾는 책임은 노동자의 몫으로 남았다. 대형 은행 콜센터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김현주(45)씨는 “회사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부터 구내식당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4,000원이면 해결하던 점심에 1만2,000원을 쓰게 됐다”며 “식비가 너무 비싸 도시락을 싸오거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는 “그나마 식비는 줄일 수라도 있지만 대출이자, 공과금 등 고정비는 줄일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동계는 격앙된 분위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성명서를 내고 "역대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에 분노하고 규탄한다"고 밝혔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의 퇴진 없이는 노동자는 기본적인 삶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앞으로의 대정부 투쟁 강화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최종 조정안으로 9,920원을 제시했으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조정안보다 낮은 금액(9,860원)으로 표결이 이뤄졌다며 노조의 전략적 실수를 탓하는 시각도 있다.

현 정부 임기 내내 최저임금의 '최소폭 인상'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모든 노동 정책은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과 차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내년 최저임금도 1만 원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 제도의 목표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소득 불평등 완화"라면서 "물가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대단히 퇴행적인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