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치즈가 있다면 동양에는 두부가 있다. 개인적으로 두부의 뛰어난 우수성에 주목하고 싶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리는 콩이 주재료인 만큼 두부는 고단백, 저칼로리, 저지방으로 이루어진 식물성 식품이다. 지방질이 많이 함유된 동물성 식품인 치즈에 비하여 많이 먹어도 비교적 탈이 덜 난다. 게다가 두부는 장염이나 식중독에 걸린 사람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착한 식품 중 하나이다. 이쯤 되면 두부가 생기기 전에 인류가 이토록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얗고 부드러운 두부 안에는 그 어떤 음식으로도 대체 불가한 강력한 존재감이 숨겨져 있다.
지금은 두부가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처음에는 서민들은 접하기 어려운 귀한 몸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 부처님을 공양하는 특별한 음식이었으며, 생각보다 두부를 만드는 데 시간과 품이 많이 들었기에 서민들은 쉽게 먹지 못하였다. 귀한 음식답게 두부는 당대 귀족 또는 명망 높은 학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고려 말 성리학자 목은 이색은 그의 문집 '목은시고(牧隱詩稿)'에 두부를 예찬하는 시를 썼다. 오랫동안 먹어 질려버린 채솟국 대신에 두부를 먹으니 금방 썰어낸 부드러운 비계 같으며, 약해진 이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두부가 보양식으로 그만이라는 말을 남겼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두부 제조법이 더욱 발달하면서, 두부는 왕실과 양반에게 두루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세종 14년에는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음식 솜씨를 극찬하였는데, 그중에서 특히 두부를 극찬하며 향후에도 두부 잘 만드는 궁녀를 보내달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두부의 역사를 살펴볼 때 불교문화와 사찰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사찰 요리에서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는 매우 중요하고 고마운 식재료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두부를 즐겨 먹는 중국, 일본 모두 사찰을 통해 두부 문화가 발전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왕실과 양반이 즐겨 먹었던 두부는 제사상에 꼭 필요한 음식이었다. 이에 능(陵)이나 원소(園所)에 속하여 나라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만들던 절이 따로 있었는데, 이를 '조포사(造泡寺)'라고 불렀다. '조포'는 '두부'의 경상도 방언으로 두부를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사찰은 그 위상이 높았고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를 선도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에 널리 퍼진 두부 제조법이나 요리법 역시 사찰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사찰 = 두부'라는 인식이 퍼져서 다른 목적 없이 오로지 두부를 먹기 위해 사찰을 찾은 양반들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두부를 떠올리면 상상이 잘 안 가는 재미난 이야기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식재료는 천의 얼굴로 변신이 가능한 음식일 것이다. 심심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의 두부는 마치 새하얀 도화지 같다. 어떤 조리법을 쓰는지에 따라 맑은 탕과 얼큰한 국물로도, 짭짤한 밥도둑 반찬으로도, 정갈한 궁중 요리로도, 의외로 서양식 메뉴인 프렌치토스트까지 무궁무진하게 변신이 가능하다. 그중 두부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두부 요리로 '언두부 강정'만 한 것이 없다.
두부를 얼리면 그 안에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된다. 꽁꽁 얼었던 두부를 해동시키면 수분이 빠져나가며 식감이 독특해진다. 그 과정에서 두부 안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무수히 많이 생기는데, 이 구멍 속으로 양념이 쏙쏙 배어 요리 맛이 더 좋아진다. '언두부 강정' 레시피는 먼저 얼렸던 두부를 녹여서 수분을 꼼꼼히 제거한 뒤에 정사각형 모양의 한 입 크기로 썬다. 그리고 전분 가루를 골고루 묻혀 기름에 튀기듯 바삭하게 구워낸다. 그동안 간장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올리고당 2큰술, 물 4큰술, 후추, 통깨를 넣고 간장 소스를 만든다. 겉면이 딱딱해질 즈음에 간장 소스를 적정량 붓고 가볍게 섞어 마무리하면 닭강정보다 맛있는 언두부 강정이 완성된다. 말랑말랑하며 무(無)맛의 두부를 기피하던 사람들도 이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한 두부 요리는 거부하기 어렵지 않을까. 수더분한 얼굴로 늘 조연의 자리만 묵묵히 맡는 두부지만, 이 요리만큼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무장하고 식탁 위의 당당한 주인공이 된다.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두부는 냉장고에 늘 구비해두는 음식 중 하나이다. 먹을거리가 없을 때도 두부 한 모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모난 구석 없이 이처럼 실속 있는 음식이 또 없다며 오늘도 '두부예찬론'을 펼치며 이 새하얀 것을 손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