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황선홍호'의 출항에 문제가 생겼다. 축구대표팀 최종 명단에 오른 수비수 이상민(23·성남FC)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연예계였다면 일찌감치 퇴출됐을 '음주운전' 전력과 함께 경찰에 적발되고도 당시 충남 아산 소속팀 경기를 3차례나 출전해 논란이 됐다. 구단에 알리지 않고 장시간 '은폐'했다는 사실이 축구 팬들을 더 경악케 했다. '황선홍호'가 질타를 받는 이유다.
나아가 국민적 공분을 살 이유는 또 있다. 음주운전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가 향후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과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짚어볼 문제다.
아울러 황선홍 감독이 이를 인지하고도 이상민을 선발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의 중심에 섰다. 황 감독은 2021년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꾸릴 때부터 현재까지 이상민을 어김없이 불러내고 있다. 일각에선 이상민이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로부터 징계(15경기 출장정지 및 제재금 400만 원)를 받고 이행했기에 황 감독 입장에선 충분히 정리됐다고 여길 만하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2년 전부터 대표팀에 발탁해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아시안게임 대표팀까지 선발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 감독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K리그에서 감독 성향에 맞는 선수를 찾기 힘들뿐더러 구단과 선수 차출을 조율하는 일도 상당히 어렵다. 그런 와중에 이상민의 발견은 황 감독으로서 포기하기 힘든 선택이었을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축구협회도 이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일단 축구협회는 이상민에 대한 협회 차원의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을 따져봤어야 했다. 해당 규정의 제17조(징계 및 결격사유) 4항에서 '음주운전 등과 관련한 행위로 도로교통법 제148조의 2의 처벌을 받은 자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국가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500만 원 이상 벌금형 선고 후 그 형이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 500만 원 미만 벌금형 선고 후 그 형이 확정된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자가 그 대상이다. 이상민은 음주운전을 저지르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황선홍호'에 승선했기에 축구협회 입장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축구대표팀은 타 종목에 비해 상당히 넓은 아량을 베풀고 있다. 지난달 진행된 페루, 엘살바도르와의 2차례 A매치를 위해 대표팀을 구성했을 때도 여론은 들끓었다. 당시 박용우와 정승현, 이규성, 이명재(이상 울산 현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눈 글들로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프로축구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어 정승현을 제외한 나머지 3명에게 1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1,50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K리그 상벌 규정 상 인종차별적 언동을 했을 경우 10경기 이상 출장정지 등 중징계를 줄 수 있는데 '솜방망이' 징계였다. 어쨌든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 명단에 박용우와 정승현의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2경기 모두 뛰게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 역시 감독의 역할"이라며 둘을 경기에 뛰게 한 이유를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해당 경기는 교내 운동회나 조기축구, 프로 무대도 아닌 국가대항전이었다. 논란이 일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황이었다.
대표팀 선수 선발이 감독의 영역이긴 하지만 최종 결정 단계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이 축구협회의 존재 이유다.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 국민들의 눈과 귀는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여전히 '여론 수렴'에 실패하는 분위기다. 최근 정몽규 축구협회장 사과 논란 및 이사진 총사퇴 파문으로 홍역을 치렀는데도 말이다. 언론에는 변화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딱히 변한 게 없어 보이는 건 왜일까.
사실 '음주운전' '학교폭력' '데이트폭력' 등 논란으로 국가대표팀 구성이 도마에 오른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야구대표팀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참혹한 결과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등장한 인물이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리그 최고 투수로 꼽히는 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이다.
안우진은 2018년 프로 데뷔 당시 고교 시절 폭력 문제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처벌을 받아 국가대표의 꿈을 꿀 수 없게 됐다.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가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 나설 수 없는 상태다. KBO가 대표팀을 구성한 WBC에는 출전 가능할 뻔 했지만, KBO 기술위원회는 끝내 안우진을 발탁하지 않았다. 학교 폭력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을 수렴한 것이다.
오죽하면 이강철 감독도 귀국 기자회견에서 "(안우진을 뽑지 않은) 그 결정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후회는 없다"고 말했을까. 안우진의 이름은 지난달 발표된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배구계는 어떤가. 남자 배구대표팀은 이달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지컵에서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3위에 머물렀다.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세계 무대로 복귀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 5월만 해도 대표팀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특히 정지석(28·대한항공)의 존재를 든든해했다. 정지석은 국내 최고의 공격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뛰어나고 서브 능력도 출중해 국내 리그에선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정지석의 대표팀 승선을 두고 배구 팬들 사이에선 논쟁이 벌어졌다. 정지석은 '데이트 폭력' 논란으로 지난해 5월 6일 대한배구협회로부터 '대표 선수 강화 훈련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1년 간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없었다. 배구협회는 정확하게 1년이 지난 뒤 정지석을 발탁했다. 하지만 '정지석 효과'는 없었다. 아울러 최근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전패를 한 여자 배구대표팀의 참담한 성적에 '학폭' 논란으로 국내 리그를 떠난 이재영-이다영 자매 이름까지 거론됐다.
그러면서 스포츠 선수들에게 유독 높은 윤리·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행동 규범이나 규칙을 지키는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가 스포츠의 기본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대표의 무게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손흥민이나 김연경이 "국가를 위해..."라며 사명감과 책임감을 새기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