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범람 우려 큰데… 지하차도 위험성 평가에 강·하천이 없다

입력
2023.07.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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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개편한 등급표 '무용지물'
강·하천 인접 여부 등 반영 안 돼

3년 전 3명이 사망한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침수우려 지하차도 통제 및 등급화 관리 기준’을 개선했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슷한 참사가 이번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또 반복됐기 때문이다. 위험도를 과소 평가하는 항목이 있거나 이번처럼 단기간에 집중호우를 퍼부을 때 범람 가능성이 큰 강ㆍ하천의 위험도를 반영하는 지표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17일 행정안전부와 충북도에 따르면, 지하차도 안전 등급은 8개 항목별로 위험도를 평가해 합산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침수 위험이 높은 것으로 1등급(총점 81~100점), 2등급(61~80점), 3등급(40~60점)으로 나뉜다.

충북도는 침수로 인해 14명(17일 기준)의 목숨을 앗아간 궁평2지하차도의 경우 3등급으로 분류했다. ‘차로 수’ 항목(5차로 이상 20점, 3~4차로 15점, 2차로 이하 10점)에서 15점(왕복 4차로), 지하통로(암거) 연장(200m 이상 20점, 50~200m 15점, 50m 미만 10점)에서 20점을 받았고, 배수시설(설치 시 -10점, 미설치 0점)에서 10점이 감점돼 총점은 25점이라는 설명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궁평2지하차도의 지하통로는 400m를 넘고, 배수시설이 설치돼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침수이력(30점), 1일 평균 차량통행량(1만 대 이상 20점, 5,000대 이상~1만 대 미만 15점, 5,000대 미만 10점), 침수위험(유 20점, 무 0점), 설계유입량(증가 시 10점), 안전시설(설치 시 -10점) 등 5개 항목은 모두 0점이었다.

합산하면 3등급에도 미달해 상대적으로 매우 안전한 지하차도로 구분된 셈이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가장 배점이 큰 ‘침수 이력’이 대표적이다. 최근 10년간 침수가 6회 이상이면 30점, 3~5회는 20점, 2회 이하는 10점인데 이에 따르면 침수 이력이 아예 없는 궁평2지하차도는 0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지하차도는 2019년 문을 열어 개통한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다. 최근 신설된 지하차도의 위험성이 10년 이상 된 다른 곳에 비해 과소평가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 평가 항목에 지하차도 주변에 강이나 하천이 있는지 여부, 또는 인접도에 따라 위험성을 평가하는 지표는 없다. 이번 침수피해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는 미호강에서 직선거리로 300~400m 떨어져 있지만, 연일 계속된 폭우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흘러넘친 물에 침수됐다.

전문가들도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퍼붓는 폭우는 범람으로 이어질 수 있어 평가 항목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 상륙 때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참사도 인근 하천의 범람으로 발생했다”며 “지하차도 위험 평가에 전례 없는 폭우와 강·하천의 인접도를 평가하는 항목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