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신사의 매너에 라틴어를 구사한 총잡이

입력
2023.07.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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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Doc. Holliday-1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이름난 총잡이들은 대부분 악당이었다. 법의 경계도, 공권력의 기미도 희미했던 황무지. 거기선 악당들뿐 아니라 평범한 카우보이나 서민들에게도 정의보다 생존이 앞선 미덕이었고, 살아남는 자가 영웅이었다.
그런 정서에서 어두운 신화들이 탄생했고, 빌리 더 키드(1859~1881) 부치 캐시디(1866~1908), 버펄로 빌(1846~1917) 등 그 신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비열한 범죄자거나 잔인한 악당이었다. OK목장의 결투로 이름난 “정의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1848~1929)도 관점에 따라서는 나머지와 크게 다르지 않던 무법의 총잡이였다.

“19세기 서부에서 가장 위험한 총잡이”라 불린 독 홀리데이(Doc. Holliday, 본명은 John Henry Holliday, 1851~1887)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는 조지아주 발도스타 시장과 교육감을 지낸 약사 집안에서 태어나 삼촌이 세운 펜실베이니아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치과의사였다. 하지만 20대 중반 무렵 당시 불치병이던 결핵 진단을 받은 뒤 치경(齒鏡) 대신 권총을 잡았고 숨질 때까지 남부와 중서부 거친 땅을 떠돌았다. 그는 1879년 7월 19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살롱에서 권총 난동을 부리던 전직 미 육군 정찰병을 사살했다. 그의 첫 살인이었다.

그는 죽음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고, 그래서 결투에 겁이 없었다. 도박판을 전전하면서도 흥이 나면 피아노를 쳤고, 내키면 흠잡을 데 없는 남부 신사의 매너로 여성을 응대했다. 그는 서부 유일 라틴어를 구사하던 떠돌이 총잡이였고, 알려진 바 비열한 범죄에 적극적으로 연루된 적은 없었다.
술집이나 형장에서 건 부츠를 신고 죽음을 맞이하리라 입버릇처럼 말하던 바와 달리 그는 병상에서 숨졌다. 위스키 한 잔을 청해 마신 뒤 자기 맨발을 바라보며 “이거 재미있네”란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