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라 세금이 결정되는 ‘맥주·탁주 종량세 물가연동제’ 폐지 검토에 나섰다. 물가 상승으로 주세가 소폭 오르는 걸 명분 삼아 주류업계가 가격을 크게 올리는 ‘편승 인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다음 주에 발표할 세법개정안에 이 같은 방안을 담는 것을 조율하고 있다. 맥주·탁주 세금을 물가에 연동하기보다 주세 인상 시기를 현재 연 단위에서 격년 이상으로 확대하거나, 비정기적으로 주세를 올리는 방식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율은 국회에서 정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맥주·탁주의 가격 인상이 민간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세율 결정 과정에서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맥주와 탁주에 적용되는 종량세는 출고량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전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70~130%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종량세율은 매년 4월 1일부터 새로 적용된다.
정부는 이 같은 물가연동제가 주류업계에 빌미를 줘 물가 상승을 부채질해 왔다고 보고 있다. 정부 협조 요청에 따라 올해엔 출고가격을 조정하지 않았으나, 지난해만 해도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주세가 2.49% 오르자, 맥주 출고가를 8% 안팎 올렸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5원의 맥주가격 상승 요인이 있을 때 업계가 맥주 가격을 1,000원에서 1,015원으로 15원만 올리지 않았다”며 “맥주·탁주의 물가 연동 과세는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5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관련 용역을 맡겨 개선 방안을 마련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맥주·탁주의 주세 인상 시기를 연장할 경우 기간만 길어질 뿐 현행과 크게 바뀌지 않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주세를 비정기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은 큰 반발이 우려되는 만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2005년 이후 약 10년 만에 세율을 올린 담뱃세처럼 국민 반발이 큰 사안에 대해 정부나 국회가 선뜻 조정에 나서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당시 담배 가격이 갑당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뛰면서 국민 여론이 악화했다. 그렇다고 주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주류업계의 실질적 부담은 오히려 내려가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양한 의견을 검토해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