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로 긴급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규탄 성명조차 내지 못하고 끝났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편들기로 인한 '빈손 안보리'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국제 질서를 해치는 명백한 위협 행위에 대한 면죄부는 간과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는 북한의 ICBM ‘화성-18형’ 발사 문제를 긴급 현안으로 다뤘다. 북한도 이해당사국 자격으로 5년 7개월 만에 출석해 '자위권 행사'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안보리 권위를 전면 배격하는 한 회원국이 터무니없는 선전선동을 퍼뜨릴 기회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북의 도발을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으로 화살을 돌린 북한 주장에 동조하면서 회의는 성과 없이 끝났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북한을 규탄한 가운데 이번 안보리 회의는 결국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만 선명히 했다.
안보리는 국제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관이다. 하지만 5개 상임이사국 만장일치제 때문에 이해관계가 엇갈린 사안들의 거부권 행사가 비일비재해 무용론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공격 중단과 병력 철수 요구안이 논의됐지만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상임이사국 확대와 거부권 폐지 등 개선 움직임도 있지만, 지금의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는 성사가 불투명하다.
서방 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각이 커진 결과이겠으나 북한의 위협이 상존한 우리에게 안보리 무용론은 결코 달가운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유엔 무대는 북한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창구인 데다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그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 세 번째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에 선출된 정부는 유엔을 지렛대 삼아 북한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 외교전을 더욱 강화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