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여름을 대표하는 풀꽃을 꼽으라면 참나리가 제격이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와 웬만한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때맞춰 꽃이 피는 참나리는 요즘 전국 어디서나 산과 들, 바닷가 절벽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굵고 늠름한 줄기에 주황색 큰 꽃들이 피어있는 참나리를 보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리류는 여럿이지만 주아(珠芽)를 맺는 종은 참나리뿐인데, 주아도 종자처럼 뿌리를 내고 싹이 튼다. 주아가 자라서 꽃대를 올리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무사히 자라면서 땅속 줄기를 키워야 한다. 그래서인지 양양 낙산사나 서해안 고군산군도 바닷가 벼랑에서 군락으로 피어 장관을 이룬 참나리꽃을 보면 신령함이 느껴진다.
옛날부터 약용이나 구황식물로 쓰인 참나리는 여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글 창제 이전 문헌에는 '개나리'의 이두식 표기인 '犬乃里花(견내리화, 향약구급방·1236)' '犬伊日(견이일, 향약채취월령·1431)' 등으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동의보감(1613)', '산림경제(1715)', '해동농서(1799)' 등에는 대부분 개나리로 기록되어 있다. 개나리는 개나리나무에서 유래했다지만 기왕에 개나리로 부르던 식물을 참나리로 선택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우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정식 식물명의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는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기록된 식물 이름들의 사정(査定)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향명집 제작에 참여한 4명의 조선박물연구회원 중 정태현 박사는 당시 임업시험장에서 근무하며 조선식물에 대해 오랜 조사를 통해 '조선산림수목감요(1923)'와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을 공동 저술한 바 있어 식물명칭 사정에 핵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두 자료에는 참나리가 당개나리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전 조선농회(朝鮮農會)에서 발행한 '조선의 구황식물(1919)'에도 당개나리로 되어 있다. 물론 이들 문헌에 참나리가 '백합(百合)'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는 식용 가능한 땅속 비늘줄기를 가진 백합과 식물을 통칭하여 쓴 것이므로 참나리를 특정한 식물 이름은 당개나리였다.
그렇다면 조선박물연구회에서 개나리나 당개나리 대신 참나리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향명집의 '사정요지(査定要旨)' 말고는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없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고, 꽃의 자태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땅속 비늘줄기를 먹을 수 있는 중요한 구황식물임을 고려한 이름을 찾기 위해 숙고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의미의 '당'과 원종에 비해 좋지 않다는 의미인 '개'를 접두어에서 빼고, 나리 중 으뜸이라는 의미로 '참나리'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이전 '재물보(1798)' 등에 '참나리'라는 이름의 기록도 있으니 사정요지의 범위에서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조선사람으로만 구성한 조선박물연구회가 식물명칭 사정 과정에서 당시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일본학자들이 '선만식물자휘(鮮滿植物字彙·1932)'나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1922)'에 기록한 당개나리를 배제했고, 정태현 박사도 자신이 저술한 책에 기재한 이름을 포기하고 참나리라는 이름에 동의했을 것이라는 명확한 전제는 새삼 뿌듯하다.
커다란 꽃에 자줏빛 검은 반점이 있어 언뜻 호랑이가 연상되기 때문인지, 호랑나비가 자주 찾기 때문인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이 포함된 'Tiger lily'라는 참나리의 영문이름이 맘에 든다. 무엇보다도 식물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성과 자주성이 잘 드러난 참 좋은 이름을 찾아 고증하고 선택한 조선박물연구회 제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