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가 원한 '나토 초대장'은 없었다... 우크라 가입 두고 나토도 분열

입력
2023.07.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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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시간표' 제시했다간 '전면전' 우려
'공동성명'서 제외... '다른 지원안' 잔뜩
젤렌스키 "안보보장 약속은 나토 가입 대체 못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11, 12일(현지시간)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나토 가입 시간표'를 확정하지 않은 것이다. '동맹이 공격을 받으면 함께 싸운다'는 게 군사동맹 나토의 존립 요체인 만큼, 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나토 초대장'을 건넸다간 회원국 전체가 러시아와의 전쟁에 휘말리는 사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나토는 대신 '가입 절차 면제' '필요한 만큼 지원' 등 카드로 우크라이나를 달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나토 초대장 수령'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나토 가입 확약만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의욕을 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인접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은 이미 우크라이나 편을 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 등이 우크라이나에 가입 확약을 해 주는 걸 반대하고 있어, 이번 정상회의 이후에도 이 문제를 둘러싼 나토 내부의 긴장과 분열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토 "필요한 만큼 지원"은 해도 '가입 확약'은 머뭇

나토 소속 31개국은 1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정상회의 후 '빌뉴스 공동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회원국들은 △나토 가입 시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컨설팅인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embership Action Plan·MAP)을 우크라이나에 한해 면제하고 △우크라이나군 현대화 등에 장기적 지원을 하며 △기존 나토·우크라이나 위원회를 '평의회'로 격상하기로 했다. "실질적·정치적 지원을 늘렸다"는 게 나토의 자평이다.

개별국의 각종 무기 지원책도 앞다퉈 공개됐다. 프랑스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스톰 섀도)을 보냈고, 독일은 패트리엇 미사일 발사장치와 마더장갑차 40대 등 7억 유로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을 약속했다. 영국 정부도 6,465만 달러의 추가 지원을 발표했다. 또 주요 7개국(G7)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기 전까지 별도의 장기적 안전 보장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 같은 약속은 우크라이나가 나토로 향하는 길에 있어 중요한 신호"라면서도 "나토 가입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젤렌스키 "시간표 없는 건 터무니없어"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대 희망이었던 나토 '가입 일정'은 공동성명에서 빠졌다. 공동성명에는 "나토는 회원국이 동의하고 조건이 맞으면 우크라이나에 초대장을 보낼 것"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는데, 이는 '나토 가입 로드맵을 알려주거나 종전 직후 나토에 합류할 수 있다는 확신을 달라'는 우크라이나 요구와 거리가 멀다. '어떤 조건을 달성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나토가 약속한 'MAP 면제'는 '초대장'을 받은 이후에야 의미가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를 향해 "시간표가 정해지지 않은 건 전례가 없고 터무니없다. 불확실성은 나약함"이라고 쏘아붙이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3차 대전 날라" 나토의 우려… 격렬한 논쟁도

나토의 신중함은 '특정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나토 헌장 5조에 기인한다. 만약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 시점을 특정할 경우, 그때까지도 전쟁이 이어진다면 나토로선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제3차 세계대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유락티브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을 자극해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서방 안보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미국 등을 중심으로 반대론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폴란드 등은 "러시아에 대해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나토 내에선 격렬한 논쟁도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공동성명에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나토에 있다" 등 모호한 문구들이 포함된 건 회원국 간 이견이 컸다는 방증이다. 독일 타게스샤우는 "(나토는) 공식 초청을 하지 않고 초청을 한 것처럼 가장했다"고 꼬집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