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야박하다 할 수도 있겠다. 배에서 내린 짐을 민박집에 부리자마자, 전봇대에 걸린 확성기가 고막을 때린다. “전복, 해삼, 홍합은 절대로 채취하면 안 됩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예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세 차례나 반복된 치안센터장(경찰) 명의의 방송은 분명 ‘환영’보다는 ‘금지’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경치를 보러 들어온 외지인의 마음엔 슬며시 ‘누굴 도둑으로 아나’ 부아가 치밀지만, 이내 ’오죽하면 저러겠나’ 싶은 아량이 몰려온다.
그런 방송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인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주민들을 만났다. “아이구 말도 마유. 육지서는 해루질(얕은 바다에서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것) 인기가 낚시를 추월할 기세라면서유? 사람들이 이제 이 섬까지 와서 자식 같은 놈들을 잡아가니.”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관광객들이 반가운 건 이 섬에선 민박집 주인들 정도가 전부다.
이 섬은 호도다. 지형이 여우를 닮았다고 해서 여우 호(狐)자를 쓴다. 행정구역은 충남 보령시 오천면 호도리. 대천항에서 50분 배를 타면 닿을 수 있다. 지금은 95가구 185명(6월 25일 기준)이 사는 작은 섬이다. 호도엔 농사 지을 땅이라고는 거의 없어 주민 대부분이 근해어업이나 양식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일부는 민박집을 운영하기도 하고. 마을 이장 정지현(56)씨에게 요즘 섬 분위기를 물었더니, 근심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관광객이 늘면서 쓰레기가 늘었어요. 성수기엔 단수, 단전까지 겪다 보니 섬 인심이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죠. 우리 섬이 지속하려면 마을 주민과 관광객이 상생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습니다.”
해녀는 제주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 호도에도 해녀가 활동하고 있다. 1960년 후반 제주 해녀들이 전복 캐러 품앗이를 왔다가 섬 총각들과 결혼하면서 정착했을 정도로 해삼 전복 홍합 소라 박하지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박정만(65) 어촌계장은 해녀들의 자맥질이 섬 사람들의 식탁을 여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까지 25명이던 해녀가 올해 21명으로 줄긴 했어요. 하지만 해녀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어획물로 섬마을 사람들이 먹고산다 해도 될 정도로, 존재감이 여전히 크지요.”
해녀처럼 잠수하지 않아도 수산물을 잡을 방법도 있다. 물이 들면 낚시, 물이 빠지면 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해루질에 바다 생물이 걸려든다. 경기 안양시에서 왔다는 정신홍(45)씨는 “농어, 놀래미가 많고 광어나 감성돔도 종종 낚인다”며 “배 시간도 좋아 낚시꾼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대천항과 호도를 하루 두 차례 왕복 운항하는 웨스트프론티어호를 이용하면 대천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섬에 들어왔다가 오후 5시 배로 돌아갈 수 있다. 이 배는 올해 스물두 살이 된, 140톤급 180인승 쾌속선이다.
특히 호도는 수심이 완만하고 발이 빠지지 않는 지형이라 비교적 안전한 해루질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바위 사이에 숨은 낙지, 해변 가까이서 노니는 꽃게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어민들도 가족들이 추억을 만들려고 해루질하는 것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박정만 계장은 “재미 삼아 하는 해루질에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느냐”며 “문제는 작정하고 달려드는 ‘꾼’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와 육지 사람들 입도가 많은 주말이 겹치면 섬에는 비상이 걸리곤 했다. 사리 때 만조 수위가 높기는 하지만, 간조 때 바닷물이 멀리까지 빠져나가 섬 주변 양식장에 손을 뻗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촌계원들이 18명씩 근무조를 편성해 양식장으로 통하는 길목과 해안 경계 근무를 섰을 정도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다. 해변에서 해루질하는 육지 사람들과 섬사람들 사이에 자주 다툼이 생겨난 것이다. 한 주민은 “낮에 일을 하자면 밤엔 쉬어야 하는데, 육지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어 피곤한 날이 많았다”고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관광객이 와야 먹고사는 민박집 사람들과, 관광객이 안 오면 더 좋은 ‘비민박’ 주민 간에도 묘한 전선이 생겼다. 박정만 계장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재작년부턴 야간 순찰을 폐지하고, 텃밭에서 사라지는 채소가 있어도 이제 주민들은 그러려니 한다”며 “섬을 찾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호도에서 주인이 객들에게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것은, 섬이 처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가 육지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5년 전이던 2018년 237명이던 주민등록인구는 214명, 208명, 200명으로 해마다 줄어들다가 지난해 192명이 됐다. 보령시 통계연보(2022년)에 따르면 40세 이하 인구비율은 보령시 38.0%, 호도 32.4%를 기록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이런 추세라면 2명의 교사가 1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청파초 호도분교도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섬 사람들이 기댈 곳은 결국 섬을 찾는 연 1만8,000명 수준의 관광객,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학교마저 없어지면 청년 부부들이 섬에 정착할 기반이 송두리째 없어진다고 판단한 마을 이장과 어촌계장은 묘안을 짜냈다. 분교 교사 2명, 치안센터 경찰관 1명, 보건소 직원 1명, 발전소 직원 6명 등의 자리에 발령을 낼 때 초등생 자녀가 있는 경우 우선 발령을 내, 폐교만큼은 막아보자는 것이다.
그런다고 애 키우는 부모가 여기서 살려고 할까. 아주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서해에서는 보기 힘든 깨끗하고 긴 백사장(1.2㎞), 9년 전 조성돼 안정기에 접어든 고즈넉한 숲길(1.5㎞) 등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길 원하는 부모들에겐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가졌다. 특히 공공기관 차량 몇 대를 제외하면 자동차가 없어 섬 전체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관광객이 느는 것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1만8,000명이 찾은 데 이어 올해에는 방문객이 2만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측됐다. 한 민박집 주인은 “한겨울을 제외하면 주말에는 10개의 방이 모두 차고, 주중에도 더러 찾는다”며 “왔던 사람들이 또 오겠다고 예약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보령과 원산도가 지난해 해저터널로 연결된 뒤, 보령 도서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그렇게 우연히 배를 타고 들어와 호도의 매력을 경험한 이들이 호도를 다시 찾게 된다.
보령시 관계자는 “최근에는 먼바다에서 백사장으로 떠밀려 온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며 “8월 말 여객선 매표소와 대합실이 완공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호도를 편안하게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