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제도 운영의 핵심 축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모두 이례적으로 의사 출신이 수장을 맡게 됐다. 의료비 상승에 영향을 주는 수가 등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사들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기석 신임 건보공단 이사장은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공단 본부에서 취임식과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3월 강중구 심평원장에 이어 정 이사장이 취임하며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건강보험 관련 기관장이 현 정부 인사로 물갈이됐다.
정 이사장과 강 원장은 '의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 정부에서 보건의료정책 관련 기관을 지휘한 것도 비슷하다.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출신인 정 이사장은 성심병원장과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해 윤석열 정부의 감염병 정책 밑그림도 그렸다. 대한수술감염학회장과 대한종양외과학회장 등을 역임한 강 원장은 심평원에 오기 전까지 일산차병원 병원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건보공단 일산병원장을 지냈다.
보건의료에 대한 전문성과는 별개로 의사 출신이란 점에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의료기관에 요양급여비용을 지급(건보공단)하고, 적정성을 평가(심평원)하는 두 기관 수장에 기관과 계약을 맺는 의사가 오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다. 비용 결정 시 환자·국민보다 의사들 입장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요양급여비용이 늘어날 경우 건강보험료는 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건보 관련 정책이 의사와 병원에 유리하게 결정되면 병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기형적인 의료정책 구조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수가 인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의사단체의 요구가 쉽게 반영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의사들이 밑에서 움직일 경우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의사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조정되는 일이 없게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도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보장성과 환자 권리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이사장은 이날 취임식 전 김철중 건보공단 노조위원장과 만나 "공공의료 확충과 사회보험의 공공성 강화는 노조와 뜻을 같이한다"며 "노조와 협력해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보장성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