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덴마크, 핀란드, 마카오 등에서는 교통규칙 위반이나 사소한 법 위반으로 벌금을 낼 때 사람마다 그 액수가 다르다. 위반자의 소득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일수 벌금제’(Day fines system) 때문이다. 핀란드의 한 재벌이 속도위반 때문에 8만 유로(약 1억1,500만 원)를 낸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개개인의 사정에 맞춰 벌금 규모를 달리하고 나름의 정의를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일수 벌금제’는 맞춤행정의 대표사례라고 하겠다.
□맞춤행정의 논리를 소득세에 적용해 보자. 물가가 상승했는데도 누진 과세구간이 상향 조정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성실한 납세자가 피해를 본다. 세금은 명목소득에 따라 매겨지므로, 실질소득은 그대로거나 줄었는데도 물가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세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미국이나 뉴질랜드가 매년 물가 상승에 맞춰 과표구간을 자동 조절하는 ‘물가연동제’를 채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과세당국이 몇 년에 한 번 과세구간을 조정하며 납세자 부담을 줄여줬다고 생색내지만, 선진국은 자동으로 조정해온 셈이다.
□경제규모 확대나 인플레이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각종 규제와 범칙금 체계의 효율이 떨어지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2001년 정해진 예금자보호 한도도 그렇다.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 중반에서 3만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5,000만 원 기준을 고수하는 건 예금보호체계의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일부 사례지만 불법·편법을 저질렀을 때 부담하는 과징금도 물가연동 조항이 반영되지 않아, 10년이나 20년 전 기준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행정체계의 맞춤조정이 적극 시행되지 않았던 건 관료집단의 반대 때문이라는 게 통설이다. 재량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일 테지만, 반대 명분은 ‘실태 파악이나 관련 통계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거래의 투명성 증가와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핑계는 통하지 않게 됐다. 시급기준 1만 원 돌파 여부가 핵심인 최저임금부터라도 맞춤조정 체계를 갖추면 어떨까. 최저임금 조정에 물가 인상을 자동 반영하고, 외국인과 내국인, 직종별·지역별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한 차등화도 검토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