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목하는 캐나다 '탄소포집 발전소'… 정작 그 나라는 "더는 안 해"

입력
2023.07.11 04:30
1면

캐나다 서스캐처원주의 석탄화력발전소 바운더리댐. 2014년 세계 최초로 탄소포집·저장(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설비를 설치했고 지금도 'CCS 석탄발전' 상업화의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는 발전소다. 탄소포집 능력은 연간 100만 톤.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을 막론하고 바운더리댐을 CCS 현실화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일 한국일보가 현지에서 만난 바운더리댐 관계자들은 그러나 "더 이상 석탄화력발전소에 CCS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CCS만으로는 국가 탄소중립(넷제로) 목표에 맞춰 강화되는 탄소 규제에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9년간의 운영 실적이 좋지 않았다는 자인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해 캐나다 정부는 2035년부터 넷제로가 가능한 연료원으로만 전력을 생산하겠다면서 사실상 석탄발전 퇴출을 공식화했다.

한국에서 탄소 감축의 우수 사례로 여기는 CCS 석탄발전을 캐나다는 왜 포기한 것일까. 그 배경에는 낮은 탄소포집률과 경제성, 그리고 '보다 확실한 대안이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석탄발전 규제하자 CCS가 등장했다

서스캐처원주 공기업인 사스크파워가 바운더리댐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1959년. 처음엔 2기였던 발전기가 점차 증설돼 1979년 6호기 가동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주 전체 전기소비량의 약 11%를 공급한다.

가동된 지 반세기도 지난 2011년, 발전소는 격변을 맞았다. 캐나다 정부가 "2015년부터 신규 석탄발전기는 전기 기가와트시(GWh)당 탄소를 420톤 이상 배출하면 안 된다"는 환경 규제를 만든 것. 일반 석탄발전기의 탄소 배출량은 GWh당 1,000톤가량이니 획기적 탄소 저감 조치 없이는 발전기 증설이 어려워졌다. 노후 발전기의 사용 연한이 임박한 바운더리댐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서스캐처원주가 대응 카드로 꺼내든 것이 바로 CCS였다. 사스크파워를 담당하는 롭 노리스 주 장관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석탄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며 CCS에 12억4,000만 캐나다달러(1조2,1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 2014년에 1, 2호기가 차례로 퇴역했지만, 3호기는 CCS를 부착하고 2014년 재가동됐다. 3호기가 내뿜는 탄소의 90%를 CCS로 포집, GWh당 탄소 배출량을 100여 톤으로 줄인다는 구상과 함께였다.

8년간 포집률 55%… 아무리 애써도 100%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후 8년간(2015~2022) 바운더리댐 CCS의 포집률은 55% 수준이다. 3호기의 연평균 탄소 배출량이 110만 톤으로 추산되는데 실제로 포집한 양은 61만 톤에 불과했다. 대기로 풀린 탄소량을 전력 GWh당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340톤. 감축 목표량의 3배를 웃돈다.

기대를 무너뜨린 요인은 석탄재였다. 탄소를 포집하려면 발전소 굴뚝 배기가스(매연)를 '아민'이라는 촉매와 접촉시켜야 한다. 아민은 매연 속 분자 가운데 탄소와만 합성 반응을 일으키고, 이렇게 생성된 아민·탄소 화합물을 모아 열을 가해 탄소를 분리하는 원리다.

그런데 배기가스에 들어있는 석탄재, 특히 철분이 아민을 분해한다는 사실을 바운더리댐 운영진은 뒤늦게 깨달았다. 탄소를 포집하려면 가급적 많은 배기가스를 아민과 접촉시켜야 하는데, 그럴수록 아민이 철저히 무력화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 철분을 제거할 뾰족한 수도 없었다. 밀브란트 그렉 사스크파워 CCS 디렉터는 "배기가스의 철분 농도를 0.0005%까지 줄인다면 아민의 분해 속도를 낮출 수 있으리라 예측되지만, 배기가스에서 석탄재를 걸러내는 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바운더리댐은 3호기 배기가스의 절반 정도만 CCS로 보내고 있다. 아민의 분해 속도를 늦추려 배기가스 접촉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나머지 배기가스는 그냥 대기로 방출한다. 포집률이 낮아진 이유다. 개선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렉 디렉터는 "포집률을 높이려 여러 방안을 진지하게 연구했고 최근엔 목표량의 70%까지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운더리댐 CCS 도입은 실패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사스크파워는 지난해 캐나다 정부의 석탄발전 퇴출 방침에 대해 "2035년까지 완전 퇴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2018년에 "석탄발전소와 CCS의 추가 설치는 없다"고 공식화했다. 조엘 체리 사스크파워 대변인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에 CCS를 활용하는 계획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13곳 중 10곳이 실패했다"

바운더리댐만 실패한 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탄소포집 플랜트 중 13곳을 분석한 결과, 10곳(76.9%)이 포집 목표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전 세계 탄소포집 설비용량은 연 4,400만 톤(35곳)인데, IEEFA가 분석한 13곳은 이 가운데 55%가량을 차지한다.

미국 캠퍼 프로젝트는 추진 단계에서 실패했다. 27억 달러(3조5,100억 원)가 투입된 알제리의 인살라 가스 프로젝트는 저장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7년 만에 문을 닫았다. 호주 LNG플랜트에서 시행된 고르곤(Gorgon)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유지보수 문제로 포집량이 목표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다른 4건도 포집 목표 절반을 채우지 못했고, 아부다비 등 2건은 아예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연구를 수행한 브루스 로버트슨 IEEFA 에너지금융 연구원은 "탄소포집은 1970년대부터 추진돼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새롭게 추진되는 프로젝트들도 결국 다른 기후위기 대응 수단에 사용돼야 할 막대한 돈을 낭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3일 방문한 한국 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 제3발전소도 바운더리댐처럼 포집률이 50%에 불과했다. 이곳에선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이 국가 CCUS 추진 계획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10㎿ CCS 설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바운더리댐 설비의 10분의 1 규모로 하루 200톤을 포집할 수 있지만, 실제 포집량은 100~140톤이다. 배기가스 절반을 그냥 방출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부발전은 "석탄재가 아니라 배기가스의 산소가 아민 분해의 원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CCS 석탄, 재생에너지보다 비싸다

비용은 캐나다가 CCS 석탄발전을 포기한 또 다른 이유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CCS 석탄발전소의 전력생산단가(MWh)는 116달러(15만 원·중위값)로 예상된다. 일반 석탄발전(88달러)보다 1.3배가량 비쌀뿐더러, 재생에너지와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2025년에는 태양광 발전 단가가 95달러(12만 원), 해상풍력은 88달러(11만 원)로 각각 떨어질 거라는 게 IEA의 분석이다. CCS 석탄발전보다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건 물론이다.

IEA가 보고한 바운더리댐의 탄소포집 단가는 톤당 110달러(14만 원). 더구나 캐나다 공영방송(CBC)에 따르면, 바운더리댐은 석탄재 때문에 분해된 아민을 교체하기 위해 2015~2016년 예상보다 2배 많은 3,200만 캐나다달러(314억 원)를 썼으며 2017년에도 1,50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협의체(IPCC)도 CCS 석탄발전소가 생산한 전기가 일반 발전소보다 최대 2배 비쌀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텍사스의 CCS 석탄발전소 페트라노바는 2020년 경제성을 이유로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마크 제이콥슨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환경공학 교수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CCS는 발전소 전기 30%를 사용해 석탄 사용량과 채굴·수송 인프라, 대기오염 물질을 증가시킨다"며 "이 돈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 더 싼값에 전기를 생산하며 탄소도 배출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바운더리댐 3호기는 시간당 전기 150MWh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 중 26.6%(시간당 40MWh)를 CCS 운영에 사용한다.

포집한 탄소 90%는 석유 생산하는 데 사용

탄소포집의 고비용 구조는 또 다른 역설적 상황을 낳는다. 기껏 포집한 탄소가 석유 생산을 위해 팔려 나가 더 많은 탄소 배출을 초래하는 것이다.

석유 기업은 유전 바닥에 남은 기름을 추출하기 위해 탄소를 주입해 원유를 묽게 만드는 원유회수증진(EOR) 기술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를 톤당 40달러 선에서 사들이는데, CCS 발전소는 이를 포집한 탄소를 처분할 기회로 활용한다. 탄소를 땅에 묻으려면 추가 비용이 들지만, 석유 기업에 팔면 포집 비용도 일부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IEEF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포집된 탄소 73%가 EOR에 사용된다. 바운더리댐도 포집한 탄소 90%를 인근 석유 기업에 판매한다. 조엘 체리 사스크파워 대변인은 "탄소를 판매하는 것이 탄소포집을 보다 경제성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거래는 탄소포집을 허사로 만든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에 따르면, EOR로 탄소 1톤을 주입할 때마다 탄소 3.4~4.7톤이 새로 배출된다. 주입된 탄소는 95% 이상 유전에 저장되지만, 새롭게 시추된 석유가 운반·활용되면서 저장 효과를 상회하는 탄소가 배출되는 것이다.

에밀리 이튼 캐나다 리자이나대 지리환경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보다 비싸게 탄소를 포집하고 또다시 석유를 생산하는 흐름은 CCS 업계의 동기에 의문을 갖게 한다"며 "CCS는 석탄 운영을 연장하고 석유 생산에 혜택을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그래도 포집 효과 있다"는 한국

우리나라는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CCS 설비를 본격 추진하는 양상이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해 가스전 활용 CCS 실증사업’에서도 전체 포집 목표 120만 톤이 전부 화석연료(발전소 10만 톤, LNG정제 110만 톤)에 할당됐다. 산업부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이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는데, 이 설명자료에서 바운더리댐 CCS 프로젝트를 참고 사례로 언급했다.

이는 2021년 기준 총발전량에서 석탄 41.9%, LNG 18.2%를 차지할 만큼 화력발전 비중이 높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올해만 해도 2,080MW 규모 강릉안인석탄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고, 내년엔 2,100MW 삼척블루파워가 준공될 예정이다. 모두 발전용량이 바운더리댐의 3배 이상이다.

다만 국내 전문가들은 CCS가 포집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탄소 감축 효과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화석연료 발전을 당분간 영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이균 한국CCUS추진단장은 "한국은 석탄발전소를 2045년까지 사용할 것으로 예측되고 산업·신재생에너지·수송 등 모든 분야에 부담스러운 감축 목표가 설정된 상황"이라며 "CCS는 투자한 에너지 대비 4배가량의 탄소포집 효과가 있는 만큼 이를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 CCS 가동에 필요한 전기를 석탄으로 공급하더라도 탄소 100톤을 포집했을 때 배출되는 탄소는 10~20톤 정도다. 탄소 80톤 이상 순감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서스캐처완(캐나다) 김현종 기자
신혜정 기자
서스캐처완 안재용 PD
뉴사우스웨일즈(호주) 최희정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