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은 왜 급발진했을까... 국민의힘 "사업 백지화 아닌 중단"

입력
2023.07.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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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장관, 당과 사전협의 없이 백지화 발표
대통령실 "원 장관 입장이 정부 입장" 존중
당 "옳은 선택" 존중하면서도 출구 전략 고민
"민주당 사과하면 주민 뜻 정부에 전달" 여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를 '깜짝' 발표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원 장관이 '원맨쇼'를 펼치며 급발진한 셈이다. 다만 대통령실과는 최소한의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건희 여사 관련 공세를 극적인 방식으로 차단하며 여권 유력 잠룡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원희룡, 회의서 '백지화' 언급 안 해... "기자들 앞에서 말하겠다"

원 장관은 7일 CBS 라디오에 나와 '독자적인 결정을 한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 상임위 간사(국토교통위원회 김정재 의원)에게 미리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당정협의회에 참석한 다른 의원이나 당 지도부는 제대로 몰랐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원 장관은 '대통령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인사상 책임까지도 다 각오하고 고뇌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전날 당정협의회 초점은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 가짜뉴스 대응'이었다. 팩트체크로 족한 자리였다. 하지만 원 장관은 비공개회의에서 "기자들 앞에서 강력한 대안을 얘기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급기야 회의 결과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끝나자 직접 적은 쪽지를 꺼내 읽으며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회의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은 "대안과 관련해선 원 장관이 알아서 하는 것으로 정리해 우리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치인 원희룡' 존재감 과시... 사전협의 강조해온 지도부도 "존중"

원 장관은 이 같은 '개인 플레이'를 통해 몸값을 한껏 높였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앞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주 69시간 근무제 등으로 곤욕을 치르며 당과 협의되지 않은 장관들의 발언을 질책해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원 장관의 결단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주무 장관 입장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며 "당정협의가 있었고, 그 과정은 거치지만 주무 장관이 책임지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사업 백지화가 총선 전략 측면에서 현실적 대안이라는 공감대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고속도로 사업이 중단되면서 여당과 정부에 책임론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내년 총선까지 민주당이 김 여사 관련 '가짜 뉴스'를 퍼뜨리게 놔뒀으면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많은 주민들이 영향을 받는 사업인 만큼 당 입장에서 결정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 원 장관 한 명이 책임지는 방식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교감 있었을 듯... 대통령실 "원 장관 입장이 정부 입장"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 없이 거리를 두며 여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다만 원 장관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번 이슈의 주무부처 장관은 원 장관”이라며 “원 장관의 입장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사업 재추진' 가능성에 대해서도 ‘원 장관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그간 윤 대통령은 주무부처 장관의 독단적인 결정이나 설익은 정책 추진에 대해선 곧바로 제동을 걸어왔다. 원 장관과 대통령실의 교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지화 발표가 여론전에 불리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주민들의 숙원인데도 야당에서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니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출구 전략 모색하며 '투트랙' 접근

여당은 이처럼 안도하면서도 '출구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고속도로 사업이 무기한 중단되면 내년 총선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권 민심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윤 원내대표는 본보 통화에서 "원 장관의 '백지화' 발언을 '중단'으로 해석한다"며 "민주당은 새로운 노선 안을 제기하든,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민주당이 괴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한다면 (사업 재개를 바라는) 양평군 주민들의 뜻을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손영하 기자
김현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