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관광 신생기업(스타트업) 하이메디에 근무하는 록시르 다와수랭은 몽골의 좀머드에서 태어난 몽골인입니다. 가족은 부모님과 여덟 남매가 있습니다. 그중 일곱째입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교육을 중요하게 여겨 여덟 남매 모두 대학에 갔습니다.
록시르는 몽골과학기술대학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한국에서 서울대학교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서 10년간 의료통역사로 일했습니다. 이후 채용 공고 사이트에서 하이메디를 알게 돼 지난해 1월 합류했습니다.
2011년 설립된 하이메디는 의료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의료관광이란 외국인 환자들이 한국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입국해 치료뿐 아니라 관광, 쇼핑 등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이 업체는 외국인 환자들이 한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병원 및 업체와 제휴를 맺고 병원, 숙소, 교통 등을 제공합니다.
록시르는 하이메디에서 한국에 의료 관광을 오는 몽골 환자를 맞이하는 의료 통역사라는 독특한 일을 합니다. 외국인 환자들이 국내에서 치료받으려면 단순 언어 소통을 넘어 전문 의료 용어 통역이 필수입니다. 현재 6명의 의료 통역사가 이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동 하이메디 사무실에서 만난 록시르는 우리말을 너무 잘해 깜짝 놀랐습니다. "고교생 때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유행해 한국을 좋아하게 됐어요. 한국 노래를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를 정도로 좋아했죠. 또 몽골 TV에서 방영된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우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기도 했어요. 대학도 한국어학과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영어가 쓸 일이 더 많을 것이라며 영문학과를 권하셨죠."
대학 시절에도 선택 과목으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3년간 한국어 수업을 들었어요. 한국어가 몽골어와 어순이 같아 어렵지 않았어요. 덕분에 한국어능력시험 토픽에서 중급 실력을 인정받았죠. 이후 한국 친구들을 사귀며 많이 늘었어요."
그는 대학 시절 강원도에서 열린 아시아 대학생 포럼 참석차 2005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왠지 '여긴 내가 살 나라구나'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날씨가 건조하지 않아 좋았고, 강원도에서 본 자연이 아름다웠죠. 2주간 한국에 있었는데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대학 졸업 후 꼭 한국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죠."
실제로 록시르는 2008년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에 다시 왔습니다. "숭실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몽골은 한국보다 사회복지가 발달하지 않았어요. 사회복지라는 말도 없고 대신 사회사업이라고 불러요.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잘하는 곳에서 배우고 싶었죠."
그러나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와서 힘들게 일하며 공부했어요. 부모님에게 부담드리기 싫어 용돈을 아예 받지 않았죠. 월세와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밤새워 일하고 아침에 등교해 공부했어요. 새벽에 퇴근하며 많이 울었어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정말 여기가 맞는지, 돌아가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죠. 부모님에게는 전화로 한국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어려웠고 밥 없이 양파만 먹었던 적도 있어요.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대학원에 입학한 지 1년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의료통역을 제안받았습니다.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한때 의사를 꿈꿨기에 열심히 의료 용어를 공부해 도전했습니다. "원래 의사가 꿈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의대에 가지 못했어요."
2주간 의료 통역을 마친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의료통역사로 일하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병원과 계약을 맺고 자유 계약직으로 의료통역사를 하게 됐습니다. "마음 한편에 의사의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어요. 의료통역사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보람을 많이 느껴요. 환자에게 치료 방법을 설명하며 의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죠. 의사의 꿈을 절반쯤 이룬 느낌이에요."
현재 일터인 하이메디는 출퇴근 시간이 유연하고 직급이 아닌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편안한 조직문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종합병원에서는 통역 일만 했지만 지금은 환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도울 수 있어 더 보람을 느낍니다. "환자가 입국해서 출국할 때까지 대부분의 생활을 함께해요. 병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쇼핑할 때도 따라가고 교통수단 이용도 옆에서 돕죠."
그는 환자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아프면 예민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이고 담당 의사가 한국에서 제일 잘한다'는 등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요. 병원과 하이메디를 믿고 의지해 성공적으로 회복한 사례를 많이 얘기하죠."
록시르가 일하며 가장 힘들 때는 환자의 치료가 잘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몇 년씩 오래 알고 지내는 환자들도 있어요. 그러면 마치 가족 같죠. 그런 환자 중에 치료가 힘들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많이 힘들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해요. 너무 우울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해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사망한 환자에게 하지 못한 부분까지 다른 환자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죠."
그는 의료 통역사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한국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복지인재원에 의료통역사 과정이 있어요. 간호사 수준으로 배울 수 있어서 꼭 이수하면 좋죠. 제가 준비할 때는 필수가 아니었지만 요즘은 병원과 하이메디에서 필수 조건으로 요구해요. 그리고 종합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많이 배울 수 있어요. 그런 경험을 쌓으면 일하기 좋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