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1995년에 같은 반 친구가 미국 프로농구 NBA 스타 샤킬오닐의 농구화인 리복의 '샤크3'를 신고 와서 자랑을 했어요.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던 슈퍼스타의 시그니처 농구화가 어찌나 부럽던지요. 당시 9만8,000원이나 하던 샤크3는 못 사고 저는 할인 매장에서 한철 지난 '샤크2'를 샀는데 그게 저의 첫 농구화였어요."
지난달 21일 리복의 국내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 강남구 LF 본사에서 만난 조형우(40) 리복 마케팅 BSU장(차장)은 농구 애호가이자 스포츠 브랜드 마니아다. 리복이 1985년 출시했던 크림색 테니스화를 재출시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5만 족 이상 팔린 '클럽C 85'를 신고 나타난 그는 리복 농구화 자랑을 했다.
"183cm의 단신으로 NBA 스타가 돼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긴 앨런 아이버슨은 리복에서 '퀘스천'이라는 시그니처 농구화를 냈고 만화 '슬램덩크' 속 지역 강호인 해남의 주장 이정환, 전호장 선수의 농구화도 리복이죠."
그에게 리복은 직장이자 '덕업일치'의 장(場)이기도 하다. 뉴발란스, 언더아머 등 스포츠 브랜드 마케팅을 해 온 그는 지난해 리복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해 리복의 글로벌 서밋 행사에 참석했다가 학창 시절 우상인 아이버슨을 만난 것을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꼽았다. 조 차장은 "그날 행사에 앨런 아이버슨이 나왔는데 제가 경품으로 그 '퀘스천' 농구화를 받았지 뭐예요. 제가 너무 기뻐하자 본사 관계자들이 앨런 아이버슨과 따로 사진을 찍게 해줬어요."
김성호(42) 리복사업부 사업부장도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 산 첫 번째 농구화로 샤크를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대 남성들에게 리복은 내가 중학생 때 제일 잘나갔던 브랜드"라고 말했다. 조 BSU장도 "마이클 조던의 에어조던(1985년 출시)을 내세웠던 나이키가 모든 영역에서 유명한 브랜드였다면 그 뒤에 나온 리복은 새로운 이미지로 농구화에 집중했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조 BSU장과 김 부장이 학창시절을 보낸 1990년대는 농구화의 전성시대였다. 역사가 100년을 넘는 러닝화와 달리 농구화는 소재와 기능 등 당대의 기술력이 집약된 유행템이었다. 1989년 리복의 농구화에는 '펌프(PUMP)'라는 버튼을 눌러 원하는 만큼 공기를 조절해 신는 느낌을 다양하게 했다. NBA 농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스타 선수들이 입고 신은 스포츠 브랜드들도 떴고 나이키를 제외하고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한 마지막 브랜드였던 리복 역시 국내에서 '리복배 3대3 농구대회'를 주최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40대와 달리 국내 50대에게 리복은 '테니스화'와 '에어로빅화'로 기억된다. 리복은 1970년대부터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제작, 납품하던 화승과 합작해 '화승리복'이라는 이름으로 1987년 국내에 진출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1989년 당시 신인 배우였던 이종원이 의자를 타고 넘는 광고로 뇌리에 박혔다. 이때 이종원이 신은 신발은 에어로빅화 '프리스타일'로 최초의 여성용 운동화였다. 조 차장은 "아버지는 주로 테니스, 어머니는 에어로빅을 취미 생활로 했다"며 "테니스화로는 리복의 1985년에 나온 클럽C, 에어로빅화로는 프리스타일이 인기였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인기를 얻자 1994년 '리복 코리아'로 직접 진출했던 리복은 2006년 미국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아디다스에 인수되며 국내에서도 '아디다스 코리아'로 바뀌었다. 이후 리복은 농구화 대신 크로스핏이라는 전문 트레이닝 분야에 집중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닝화인 '나노'는 2011년부터 13년 동안 해마다 새 제품을 내며 북미 지역 트레이닝화 시장을 평정했다.
하지만 리복이 트레이닝 시장에 집중함에 따라 국내 종합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리복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2012년 배우 안소희가 모델로 나선 GL6000이 인기였지만 1980년대 리복의 러닝화를 일상생활용 신발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본사 차원의 신제품은 아니었다.
리복의 운명은 2021년 미국의 브랜드 기업 어센틱브랜즈그룹(ABG)이 리복을 약 2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또 한번 바뀌었다. ABG는 브랜드 관리 기업으로, 2020년 파산보호신청까지 갔던 포에버21, 브룩스브라더스 등을 사들였는데 올해도 레인부츠의 대명사인 영국 브랜드 헌터를 품었다.
ABG는 리복을 다시 한번 종합 스포츠 브랜드로 부활시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조 차장은 "나이키·아디다스·퓨마 같은 종합 스포츠 브랜드는 1970년대에는 러닝화, 80년대 코트화, 90년대 농구화 등 전문 운동화 라인업을 갖췄다"며 "현재는 그 기술을 활용해 패션 스니커즈로 풀어 다시 보여주면서 소비자에게 전통 있는 브랜드로 다가서는데 리복도 다시 한번 이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LF가, 일본에서는 이토추상사가, 유럽에서는 명품 플랫폼 파페치의 자회사로 브랜드 개발을 담당하는 뉴가드그룹(NGG)이 리복 사업을 전개한다.
ABG는 글로벌 시장 중에서도 한국을 트렌드 세터로 평가한다. 미국만 해도 출근할 때 '컴포트화'를 신지만 한국은 러닝화나 농구화를 신고도 일터에 갈 정도로 스포츠 아이템을 일상에서도 잘 활용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한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전략이 잘 먹힌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리복 인수 후 ABG가 글로벌 파트너들과 처음으로 프레젠테이션하는 자리에서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은 전 세계 트렌드보다 15개월 정도 앞서 있다'고 말할 정도"라며 "유럽에서 리복을 운영하는 NGG도 '한국에서는 요즘 유행이 무엇이냐', '누구와 협업하냐'고 물어볼 정도로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서 올해 리복은 리복이 낯선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들에게 '클럽C 85'등 과거 명성이 높았던 아이템을 앞세워 리복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작업에 열중했다. 국내에 있는 기존 크로스핏 아이템 위주의 리복 매장들을 종합 스포츠 브랜드에 걸맞게 새 단장하고 있고 올 상반기에는 국내 스트릿 패션 브랜드 예스아이씨와 협업해 티셔츠와 바람막이, 모자 등을 선보였다.
내년부터는 글로벌 차원에서 리복 신제품이 나오는데 한국 시장 맞춤 상품도 기획한다. 김 부장은 "리복의 신기술을 적용한 러닝화가 출시되는데 한국에서는 러닝화의 기술을 차용한 일상생활용 신발을 따로 내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한다"며 "앞으로 국내의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협업과 단독 상품을 진행하면서 리복을 종합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