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잘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면 회한이 없는 지방 도시가 있겠냐만, 충남 공주시는 특히 더 서럽다. 웅진 백제 수도 이전 때부터 근대에 이를 때까지, 이곳은 수로교통과 내륙교통의 거점이었다. 한때는 충청 관찰사까지 일을 보던 충청의 중심이었지만, 경부선 철도 건설 이후 개발에서 소외되는 바람에 동네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꾸라졌다.
1932년엔 충남도청까지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돈과 사람이 빠지기 시작했고, 10여 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표방한 세종시까지 바로 옆에서 인구를 빨아들이자,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시가 됐다.
인구 10만을 지키기도 위태롭던 2021년 말, 전국의 소멸위험 지역 89곳에 공주시가 포함되자 탄식이 쏟아졌다. "올 것이 왔다." "진짜 사라지는구나." 이럴 바엔 세종시에 편입되는 게 차라지 낫지 않겠느냔 하소연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공주가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1,000명 이상씩 인구가 줄던 공주시 인구가 갑자기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7일 공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시 인구는 10만2,753명으로 작년 말 같은 기간(10만2,571명)보다 182명 증가했다. 공주시 관계자는 “지금 추세라면 올해 인구는 전년 대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1966년 20만2,635명을 기록한 뒤, 한 번도 인구가 늘었던 해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57년 만에 첫 인구 증가라는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주대, 공주교대, 공주사대부고, 한일고, 충남과학고등 전국구 학교를 보유한 교육도시 공주는 지금도 충청권은 물론 전국에서도 청년들이 찾는 곳이지만, 거기엔 뚜렷한 패턴이 있었다. 오로지 학교 때문에 사람이 늘었다는 점이다. 학교의 입학과 학생들의 전입 신고가 이뤄지는 3월까지는 인구가 늘다가, 4월부터 연말까지 줄곧 감소하는 것이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6개월 중 5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인구가 늘었다.
이순종 공주 부시장은 “큰 증가는 아니어서 안심하기엔 이른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번 인구 증가를 이끈 주체가 10여 년 전부터 보이던 은퇴자들의 귀촌이 아니라 타 지역에서 이주해오는 청년들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구 증가의 양적인 측면보다 질적인 측면을 주목해야 한단 얘기다. 시대 흐름을 빠르게 읽어가며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은 고령화, 소멸 위기 지역에 보배 같은 존재다.
쪼그라들기만 하던 백제 고도(古都)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활기를 띠게 된 걸까. 공산성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공주우체국 근처의 제민천변을 두어 시간 돌자,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청계천처럼 구도심을 통과하는 작은 하천인데도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몰린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근처엔 다소곳한 자태로 눈길을 끄는 건물이 많았다.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옛 공주읍사무소, 서울의 광화문 같은 느낌의 충청감영터와 공주제일교회, 하숙마을, 여관을 리모델링한 산뜻한 숙소,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발길을 잡아 세웠다. ‘이런 곳에 이런 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카페와 북카페, 공유오피스, 갤러리, 와인바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반죽동과 봉황동, 중동, 중학동이라는 법정 동명에도 불구하고 ‘제민천 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여행 온 이소라(25)씨는 “서울의 광화문과 종로, 인사동, 삼청동, 북촌에서 볼 법한 풍경들을 이곳에서 접했는데, 크게 북적대지 않아 매력적이었다”며 “높은 건물이 없어 마을 전체가 주는 편안한 느낌이 좋아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 각지에서 여기로 와 눌러앉은 청년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서울살이를 접고 온 대구 출신의 박진서(28ㆍ숙박업), 윤재서(26ㆍ마을문화기획ㆍ광주), 장원희(30ㆍ브랜드마케팅ㆍ서울)씨는 이구동성으로 “소득은 줄었지만, 이곳에서 덜 외롭고, 더 넓은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방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텃세가 이곳에선 없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년 전 서울에서 가족과 공주로 이주한 공연 제작사 대표 조성호(37)씨도 “이주민에게 열려 있고,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청년들을 환대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며 “서울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조 대표를 포함한 공주 이주 청년들은 대부분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등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거주 지원을 받았다.
아무리 동네 인심이 좋고, 정부가 정착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일거리도 없고 도전할 가치가 없는 곳으로 청년들이 옮겨올 리는 만무한 일. 공주 구도심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공주시와 충남도, 중앙부처가 10여 년 전부터 공을 들인 도심재생 사업이 근간이 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2014년부터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제민천 생태하천 조성사업(환경부)이 대표적이다. 또 2015년부터는 고도 육성 사업 중 하나로 한옥 신축, 증축을 지원하는 고도이미지찾기사업(문화재청), 마을어울림 플랫폼 및 나태주 시인 문학플랫폼 조성사업(국토교통부), 하숙마을 내 여행자쉼터 조성(문화체육관광부) 등 각종 사업이 제민천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일어나면서 기존에 없던 사업 모델과 이색적인 상가가 출현했다.
특히 마을 전체를 수평적인 개념의 호텔로 꾸리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면서 관련 창업이 줄을 이었다. 여관을 개조한 숙박업소가 문을 열고, 공유 오피스 등이 문을 열면서 워케이션(Work+Vacationㆍ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근무제도) 목적지 리스트에도 공주시는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공주시 관계자는 “호텔에서는 잠을 자고 층간 이동을 통해 식사, 회의 등을 하지만, 이곳에선 수평 이동을 해서 식사, 놀이, 회의 등 다양한 일을 한다”며 “올 초엔 전국의 국어교사들이 제민천 마을에서 2박 3일 겨울 연수 행사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주시에 따르면, 제민천 정비 이후 개성 있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2015년 895개이던 제민천 주변(중학동)의 사업체 수는 지난해 1,097개로 늘었다. 또 중학동 유동인구는 지난해 3월 한 달 1만7,039명에서 올해 3월 3만8,089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소멸위기 지역에서 상가가 늘었다는 것은 유동인구 증가를 의미하고, 이는 생활인구 확대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정착 인구 증가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지역 문화유산과 제민천을 활용해 하나의 지역 브랜드를 구축한 공주시 등을 벤치마킹해 지난달부터 전국 10곳에 ‘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활성화 사업’을 시작, 지역 부활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공주시와 같은 성공 스토리를 쓰기 위해선 건설·토목 등 '인프라’ 외에도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구축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송두범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원주민의 노력도 있었지만, 공주 원도심이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배경엔 외부에서 온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며 “이주민과 원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