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극도로 싫어했던 이들... 베를린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23.07.08 10:00
19면
넷플릭스 다큐 '엘도라도: 나치가 혐오한 모든 것'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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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독일 베를린은 성소수자 천국이었다. 이들을 위한 여러 클럽이 성업을 했다. 가장 유명하고 많은 이들이 몰렸던 곳이 ‘엘도라도’다. 업소 입구 간판에는 ‘이곳에서는 다 옳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다름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게 엘도라도는 해방구였다. 자유분방한 사회 분위기 덕을 보기도 했다. 바이마르공화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채택했다.


①어느 때보다 관대했던 시대

베를린은 성에 대한 실험 정신이 넘쳐났다. 마그누트 허스펠드 박사는 연구소를 설립해 성 다양성에 대해 설파하고 나섰다. 동성애자는 물론 트랜스젠더도 베를린에 몰렸다. 허스펠드 박사의 연구소는 성전환 수술까지 담당하며 성소수자의 요람이 됐다. 여성이나 남성이 이성의 복장으로 거리를 다니면 풍기문란죄로 체포됐으나 허스펠드 박사가 승인한 통행권만 있으면 면책 대상이 됐다. 연구소에서 ‘치료’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언론은 트랜스젠더 부부나 동성 부부를 인터뷰해 보도하고는 했다. 성에 대해 어느 때보다 관대하니 엘도라도는 번창할 수밖에 없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나치는 성소수자를 극도로 싫어했다. 순수 혈통 아리아인 양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성소수자 유대인은 더욱 탄압받을 수밖에. 허스펠드 박사는 유대인이었다.


②나치는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수백만 청년들로 구성된 나치 돌격대(SA)의 수장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엘도라도 단골이었다. 나치 내부에서도 룀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룀은 성소수자 탄압에서 열외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친구라는 호칭을 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유명 테니스 선수 고트프리트 폰 크램 역시 탄압받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엘도라도를 드나들며 동성 애인을 사귀었으나 나치는 모른 척했다. 크램이 금발에 파란 눈으로 전형적인 아리아인이어서다. 그가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자연스레 선전하게 될 터이니까.

③나치가 물러나도 계속된 비극

나치의 탄압은 무도했다. 정권을 잡기 전 작성된 ‘핑크 리스트’를 바탕으로 성소수자들을 체포했다. 성소수자들은 강제수용소에서 가장 힘든 노역에 투입됐다. 많은 이들이 굶어 죽었다. 다큐멘터리는 1920~1930년대 엘도라도를 출입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즐겼던 몇몇의 사연을 축으로 삼아 시대의 여러 모습을 재현해낸다. 반나치 발언을 해외에서 했다가 결국 처벌을 면치 못했던 크램, 권력을 누리며 기고만장했으나 결국 권력투쟁의 회오리 속에서 참살당해야 했던 룀, 불우한 시대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영영 헤어져야 했던 트랜스젠더 커플의 사연들이 이어진다.

뷰+포인트
나치 독일의 폭력성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성소수자라는 렌즈를 통해 시대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권력의 폭압이 소수자에게 얼마나 더 잔인하게 작용하는지 새삼 웅변한다. 나치 때 만들어진 동성애 처벌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폐지되지 않는다. 테니스 선수 크램 역시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된다. 1990년대 들어서야 독일에서 동성애 처벌이 온전히 사라진다. 어느 때보다 진보적인 생각이 넘쳐 났던 1920년대 독일에서 극우 정치세력 나치가 등장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100%, 시청자 83%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