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은 위기에 아랑곳없다. 도리어 올라타기 일쑤다.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과 전쟁도 어쩌면 기업에 기회가 됐는지 모른다. 전 세계 주요 대기업 700여 곳이 최근 2년 사이 글로벌 위기를 틈타 평소보다 더 거둔 초과이익이 연간 1,4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 가디언은 세계 거대 기업 722곳이 지난 2년 동안 치솟은 에너지 가격 등에 힘입어 각 해에 1조 달러(약 1,300조6,000억 원)가 넘는 망외의 이익을 얻었다고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과 액션에이드의 주장을 인용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단체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1, 2022년 해당 기업들의 연간 이익이 2017~2020년 평균보다 89%나 늘었고,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횡재 이익’이 2021년 1조800억 달러(약 1,410조 원), 지난해 1조900억 달러(약 1,420조 원)였다. 두 단체는 직전 4년 연평균 기업 이익의 110% 초과분을 횡재 이익으로 정의했다.
최대 수혜 분야는 에너지다. 포브스 명단에 올라 있는 2,000대 기업 중 45개 에너지 기업이 재작년과 지난해 평균적으로 확보한 초과이익은 2,370억 달러에 이르렀다. 조사 대상의 6% 남짓한 기업이 전체 횡재 이익의 22%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그 덕에 에너지 억만장자 96명의 총 자산도 작년 4월보다 500억 달러 많은 4,320억 달러로 불었다.
에너지 기업뿐 아니다. 해당 기간에 제약 회사 28곳이 연평균 470억 달러, 주요 유통 업체 및 슈퍼마켓 42곳이 평균 280억 달러 규모의 초과수익을 챙겼다. 9개의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기업은 평균 80억 달러를 예년보다 더 벌어들였다. 이들 기업에는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그에 따른 공급망 붕괴와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이 더없는 기회였던 셈이다. 인류의 비극을 돈벌이 기회로 삼았다는 빈축이 나올 법하다.
심지어 비난까지 나오는 이유는 ‘그리드플레이션’이다. 기업 탐욕(greed)이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상승)을 자극한다는 가설을 토대로 언론이 만든 조어다. 실제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공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작년 1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1년간 유럽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에 최대 영향(45%)을 미친 변수는 기업 이윤 증가였다. 에너지·원자재 등 수입 물가 상승(40%)보다 기여도가 높았다.
단적인 사례로 지목돼 도마에 오른 건 식품·음료 분야다. 옥스팜 등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 가격이 14% 뛰었는데, 18개 식품·음료 업체가 2021~2022년 거둬들인 연평균 수익은 140억 달러였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으니 판매가를 내렸으면 좋겠다”며 라면 업계를 압박하기도 했다.
횡재 이익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옥스팜 정책 책임자 케이티 채크러보티는 가디언에 “식품 업체들이 초과이윤으로 ‘대박’을 터뜨릴 때, 동아프리카에서는 굶주림 때문에 수천만 명의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고, 그들이 물가를 자극하는 바람에 영국 등 전 세계 수백만 명도 생계 유지에 애를 먹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