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 밑에 이산화탄소를 영구히 묻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5월 착수할 예정이던 해저시추가 기술적 문제 때문에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한국CCUS추진단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해외에서 해저시추 전용 선박(시추선)을 용선해 시추를 재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필수인 이산화탄소 저장소 확보가 지연되는 걸 막으려는 선택이지만, 탄소중립 기술 자립화가 늦어짐에 따라 향후 기업 활동이나 국가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추를 시도하다 중단된 곳은 전북 군산항에서 약 165㎞ 떨어진 서해 대륙붕 군산분지다. 연구진은 이곳의 심부 퇴적지층을 유력한 이산화탄소 저장소로 지목하고, 자체 개발한 시추용 해상작업대(플랫폼) 설치를 전문업체에 의뢰했다. 5월 중 설치가 완료되면 연구진이 6~8개월에 걸쳐 바다 밑 2개 지점에 2㎞ 깊이로 구멍을 뚫을 예정이었다(한국일보 2월 21일 자 '올봄 서해 바다 밑 2㎞ 뚫는다… 6년 뒤 이산화탄소 영구 저장'). 시추공을 통해 지하 구조가 이산화탄소 저장에 적합한지, 얼마나 저장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플랫폼을 구성하는 두 개의 모듈을 결합하는 도중 기기 손상 등의 문제가 발생해 설치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업체 인력 한 명이 다쳤는데, 치료를 받고 다행히 회복돼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를 수습하느라 연구진은 플랫폼 설치를 멈추고 비상 대응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당초 시추를 진행하려던 시점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인허가와 기상여건 때문에 해를 넘겨 일정이 반년가량 지연됐는데, 이번에 또 미뤄진 것이다.
올해 3월 정부가 발표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육지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잡아다 산업적으로 재사용하거나 해저에 가둬두는 포집·활용·저장(CCUS) 방식으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1,120만 톤을 감축해야 한다. 가장 유력한 해저 저장소는 생산이 끝난 가스전이 있는 동해 울릉분지로, 한국석유공사가 여기서 탄소 포집·저장(CCS)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곳만으론 저장 용량이 부족해 군산분지와 동해 한국대지, 남해 제주분지와 현무암대지, 서해 흑산분지 등이 저장소 후보지로 꼽힌다. 그중 군산분지부터 탐사해 보기로 했는데, 시추 시작도 전에 사고가 발생했다.
연구진은 수차례 논의 끝에 결국 전용 시추선을 외국에서 빌려오기로 지난달 말 의견을 모았다. 플랫폼을 다시 만들려면 1년은 걸리는 데다 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이균(공주대 지질학과 교수) CCUS추진단장은 “플랫폼 제작부터 해저시추, 이산화탄소 저장까지 기술을 자립화하려던 목표를 잠시 접고 저장소부터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어디에 얼마나 저장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부족한 공간은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시추선은 대개 1, 2년 치 일감을 갖고 있다. 우리 탄소중립 일정에 맞는 시추선과 빠른 시일 내에 계약을 맺는 게 관건이다.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 재검토에 나선 상황에서 시추선 빌리는 비용이 추가로 들지 모른다는 점도 부담이다. 김구영 지질연 이산화탄소지중저장연구센터장은 “전체 탄소중립 계획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시추를 재개할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저장소 확보를 위한 시추·분석·평가에 책정된 기존 예산은 2021년부터 올해 말까지 200여억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