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 1조 매출이 목표입니다."
'대구경북신공항 최대 수혜 기업.' 대구경북 지역에서 건설 자재를 비롯해 '골재', '아스콘', '레미콘'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홈센타홀딩스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홈센타홀딩스는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해 2017년 지주회사로 전환, 현재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2015년 대구경북신공항이 경남 밀양에서 의성과 군위로 방향을 틀면서 주가가 3배나 뛰었다. 핵심 계열사인 보광산업의 경우 주가가 10배 넘게 폭등했고, 대구시 군위군 소보면과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 걸쳐 신공항이 건설되기로 확정되면서 다시 한번 2배 상승했다.
매출만 살펴봐도 홈센타홀딩스는 2017년에 2,200%가 넘는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해 코스닥 상장사 중 해당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2018년 매출 2,390억에서 2019년 2656억, 2020년 2559억, 2021년 3250억원, 그리고 지난해에는 5,300억을 기록했다. 현재는 2030년까지 매출 1조를 돌파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향후 사업 전망은 더 밝다. 예정된 건설 공사의 규모가 역대치다. 군공항과 민간공항 이전에 각각 11조 4,000억원과 1조4,000억원이 예상되어 있고, 군위군과 경북 의성군 지역은 철도, 도심항공교통 등 교통인프라를 구축해 첨단물류, 산업단지, 친환경 공항신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공항 신도시와 항공클러스트, 주거 상업 교육 시설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
이에 더해 신공항 후적지 개발도 추진된다. 후적지는 공항과 가깝고 팔공산에 병풍처럼 버티고 있는 데다가 금호강을 끼고 있어 세계적인 첨단 도시이자 문화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건설업계에서 회자되는 말을 옮기자면 이른바 '50년 건설 호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4월 기자간담회에서 군부대 이전까지 한다는 가정 하에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등의 토목건설 사업 규모가 60조에서 100조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병준(53) 홈센타홀딩스 회장은 "IMF 사태를 겪으면서 대구의 굵직한 건설 기업들이 모두 무너지다시피했는데, 지역 건설계의 화려한 부활이 목전"이라면서 "우리 홈센타홀딩스뿐만 아니라 건설 관련 업체들과 기업들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폭풍전야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홈센타홀딩스가 가장 자신하는 대목은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2015년 대구에 있는 레미콘 공장을 인수하면서 골재 채취부터 레미콘 제조까지 모두 가능해졌다. 대구경북 내 최대 대골재생산이 가능한 석산에, 도심에 자리잡은 레미콘 공장, 사통팔달 편리한 교통과 물류시스템 구축으로 효율과 생산력에서 대구경북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홈센타홀딩스는 건설 자재 회사로 출발해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노하우를 쌓은만큼 어떤 상황도 자신있다"면서 "그야말로 준비된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홈센타홀딩스의 연혁을 거슬러 올라가면 출발점은 1970년 6월29일이다. 박 회장의 부친인 박철웅(80)명예회장이 '홈센타'라는 건설 자재 회사를 열면서 기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의리'였다. 소비자와의 의리를 실천하는 첫 단추는 품질이었다. 절대 품질을 속이지 않는 운영으로 건축 자재 매출이 전국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상생 마인드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노태우 대통령 ‘200만 호 주택 건설’ 사업이었다. 1988년에 공약으로 내건 건설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1990년대 초반에 건설 붐이 일었다. 짧은 기간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건설되면서 건축 자재 파동이 왔다. 자재 가격이 5배 이상 폭등을 했다. 그때 박 명예회장은 소매가를 동결시켰다. 공급도 원활하게 진행했다. 그 결과 상생과 신뢰를 중요시하는 사업체로 이름을 얻었다.
대구경북에서 건설 자재 분야에서는 제일 건실하다는 평가를 얻은 후 1994년에 경북 고령에 채석장을 확보하고 레미콘 업계에 진출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기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홈센타홀딩스는 업계에서 상생을 추구하는 사업체로 명성을 얻고 레미콘 업계에 진출하면서 발전방향과 틀을 잡았다. 동시에 90년대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했다. 격렬한 성장통을 겪었다.
1993년 박 명예회장이 시의원에 도전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145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사업자금 마련을 고심하고 있던 김모씨가 이를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 범인은 동네 후배를 범행에 끌어들여 박 명예회장을 납치해 84시간 동안 끌고 다녔다. 이른바 ‘대구시의원 납치사건’이 벌어졌다.
납치범들에게 풀려난 후 박 명예회장은 가족들에게 "이제 두 번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후 기부 등 사회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들인 박 회장의 전언이다. 박 회장은 "덕망을 쌓고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지셨다"고 전했다.
두 번째 성장통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때 찾아왔다. 부도를 맞았다.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사 중의 하나였던 청구가 무너진 것이 직격타가 됐다. 이때 다시 박 명예회장이 나섰다. 시의원을 사퇴한 후 사재를 털어 모든 부채를 다 갚았다. 그 얼마 전에 인수했던 케이블 텔레비전 업체도 매각했다. 건국 이래 최대 경제위기라고 불렸던 IMF에 맞닥트려서도 1970년 홈센타를 열 때부터 가졌던 '상생 경영'의 신념을 지켜냈다. 박 회장은 "불굴의 경영 이념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그 신념과 뚝심이 홈센타홀딩스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모진 고통을 안겨준 IMF였으나 풍파가 지난 후에는 다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청구와 우방 같은 지역 대표 건설사들이 부도난 것은 뼈아픈 일이었지만, IMF를 통과하고도 살아남은 업체들은 모두 탄탄한 알짜 사업체들이었다. 허방이 사라지면서 홈센타홀딩스는 IMF 이후 순탄한 경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100년을 가기 위해서는 채석장이 절대적이다."
2004년 무렵 박 명예회장이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석산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었다. 박 회장을 비롯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말렸다. IMF라는 거대한 폭풍이 훑고 간 지 겨우 5년 남짓이었고 경북 고령에 이미 채석장이 있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박 회장은 "지나고 나니 정말 '신의 한 수'였지만 그때는 그저 고집인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그 얼마 전 박 명예회장은 딸을 만나러 워싱턴DC에 다녀왔다. 당시 사위가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박 명예회장은 워싱턴에서 가장 큰 레미콘 공장 네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시장 조사를 했다. 그때 미국 경영인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눈 끝에 "레미콘 회사가 오래 가기 위해서는 결국 석산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박 명예회장이 찾아낸 적지는 대구시 군위 효령면 매곡리 산 137번지였다. 현재 보광산업의 심장으로 통하는 이 석산을 확보하기 위해 환갑을 넘긴 나이에 잠을 아껴가면서 직접 뛰어다녔다. 관청 출입은 물론 민원까지 직접 챙겼다. 그 결과 축구장 60개에 달하는 43만 제곱미터의 석산을 얻을 수 있었다. 박 명예회장의 말마따나 100년 기업의 기반을 다진 셈이었다.
박 회장은 "아버지는 지역 최고가 되려면 국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신다"면서 "늘 주변보다 한발 앞서 가고 더 멀리 보고 강력한 실천력을 보이는 것은 모두 그런 마인드가 바탕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보광산업은 규모 외에도 국내 최고의 친환경시설을 갖추고 있다. 환경부장관 우수상,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지역 최고라는 타이틀이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박 명예회장의 신념과 경영철학에 따른 결과였다.
현재 홈센타홀딩스는 최대 호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30년 매출 1조 돌파를 자신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30년 이전에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박 회장은 그럼에도 "기대 반 우려 반의 상황"이라고 했다. 홈센타홀딩스에 대한 우려는 아니다. 홈센타홀딩스의 주력 사업 분야에는 지역에서 대항마가 없고, 레미콘 아스톤의 제품 특성상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받는 까닭에 어떤 건설사가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보광산업의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원도급 단계다. 박 회장은 "지역 건설사가 원청이 되어야 지역 하도급율이 높아지는데, 외지 업체가 들어오면 지역 하도급률이 30%로 떨어진다"면서 "우리야 어느 업체가 들어오던 매출에 영향이 없지만 지역의 산업을 놓고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과거 대구경북 건설업체는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시공기술을 자랑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곳곳을 누볐습니다. 지금도 대구경북 건설사가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역 건설사는 대형 토목공사에서 단순 지분 참여에 그쳤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역에 큰 수혜가 없습니다. 실력이 충분한 만큼 서로 마음을 모아서 지역을 살리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일으키는데 건설 분야가 한 축을 담당해야 합니다."
박 회장은 "아버지가 평생 실천한 의리와 신뢰의 경영은 결국 혼자만 잘 되어선 소용없다는 마인드라고 생각한다"면서 "신공항이 균형이 무너진 대한민국이 올바로 서게 되는 계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첫 단추가 지역 건설사와 협력업체가 보다 주도적으로 개발에 참여해 전국적인 명성을 되찾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