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통일부 장·차관을 교체했다. 특히 베테랑 외교관인 '미국통' 문승현 차관을 발탁한 것에 놀라는 이들이 많다. "남북관계를 보편적 국제규칙을 적용해야 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려는 것 같다." 한 북한 전문가의 해석이다.
큰 변화다. 30년 넘게 유지된 남북관계의 기본 원칙을 버린 셈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용도 폐기될 수도 있다. 합의서는 남과 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이후 보수와 진보가 각각 3차례 집권했지만 대원칙을 바꾸지는 않았다. 한반도 정세가 아무리 얼어붙어도 물밑 대화와 교류 협력의 끈은 이어갔다. 북한은 내키지 않는다고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고민이 컸을 법하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정세는 뒤죽박죽이다.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나 우방과 밀착해야 생존의 길이 보인다. 북한을 각별히 대우하는 건 한가한 일로 비칠 수도 있다. 대북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다.
기조를 바꾼다 해도 국내 여론이 나쁘지 않다. 북한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그만큼 줄었다. 지난해 7월 국민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향후 남북이 어떤 관계를 맺는 게 바람직한가'라고 물었더니 52%가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라고 답했다. 17%는 '현재와 같은 2국가'를 선호했다. 합하면 10명 중 7명이 '투 코리아'(two Korea·두 개의 한국) 체제를 바란 것이다.
6·25전쟁 이후 70년을 갈라져 사는 동안 '하나의 민족'이라는 유대감도 희석됐다. 정대진 한라대 교수는 "주장이 난무하는 정치권에서조차 남북관계 특수성을 강하게 외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1만 자 넘는 연설문에 북한을 단 한 번 짧게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다만 대북정책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긴 안목이 필요하다. 변수가 많아서다. 국제적 역학관계에 더해 남북 양측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언제든 휘청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남북한을 국가 간의 관계로 보려는 정부의 시도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당장 우리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면 대화와 교류협력 노력을 끊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남한의 1.7% 수준(2021년)에 불과하다. 냉정히 따지면 '별 볼일 없는' 파트너다. 남북경제협력은 통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불필요한 오지랖일 뿐이다.
하지만 웅크리던 북한이 밖으로 나선다면 어떨까. 당장 9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북한에 기회다. '뒷배' 중국에 의지해 국제사회의 무대 위로 다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자칫 우리는 무대 아래에서 씁쓸하게 군침만 삼켜야 할지 모른다.
특히 북한이 미국, 일본과 소통을 재개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고리로 북한에 손을 내밀었고, 미국은 대북제재를 강조하면서도 '조건 없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며여지를 남긴다. 한미일 3국 공조만 외치다 우리만 뒤처질 수도 있다. 또, 이산가족 상봉 등 북한과 '특수관계'라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도 동력을 잃게 된다.
'반공이 국시'라던 박정희 정권도 1972년 북한과 7·4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남북대화가 유용한 전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원칙'에 기반한 대북기조 속에도 전략적 '유연성'은 필요하다.